천천히, 충분히 시간을 가져요

귀와 코에 물 넣기

by Liaollet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불편함에 직면해야 했다. 마치 수영을 시작하기 위해 귀와 코에 물이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해녀학교에서는 학교 졸업생인 사무국장님이 이론과 실습수업을 진행하셨다. 입수 수업 전, 귀와 코에 물이 들어가는 불편한 감각에 익숙해지도록 과제를 내주셨다. 이 이상한 느낌이 시작을 위한 첫 번째 단계였다.


시작은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다. 그 순간에는 코가 찡하며 맵고, 귀가 먹먹하다. 처음 시작은 언제나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곧 지나갔다. 그러다 보면 이미 첫 번째 단계를 넘어섰다. 바다로 들어갈 입장권을 얻은 것이다.


제주도 첫 바다 입수는 판포포구로 정했다. 이곳은 제주도 서쪽에 위치해 맑고 깨끗한 모래바닥으로 유명하다. 스탭친구가 다이빙을 할 수 있어 도움을 청했다. 처음에는 물온도가 춥고, 몸에 힘이 들어가 허우적거렸다. 호흡이 엉망이 되자 스탭친구가 다가와 말했다.


판포포구에서 수영하기


하던 대로 편하게 숨을 쉬는 거예요. 천천히.


천천히, 우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호흡이 안정될 때까지 편안하려 노력했다. 스탭친구가 말한 대로 집중해서 들이마신 숨이 온몸으로 퍼진다 상상했고, 안 춥다고 최면도 걸었다. 처음엔 잘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여자가 가진 게 한 가지 있다면 믿음이다. 무엇에 대한? 당신에 대한? 굳이 어떤 누구에겐가, 혹은 무엇에겐가 구체적인 믿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믿음이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 이로 인해 여자는 은혜를 입을 때가 종종 있다. 단 한 번도 믿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나에 관한 너의 이야기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Believe _ Liaollet


종교적인 신념은 가지지 않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현실은 때론 가혹하고, 숨 쉬기 어렵다. 그런데 할만하기도 하다. 불편함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걸 믿는 게 중요했다. 구체적이지 않아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믿음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숨이 안정 됐다고 느끼면, 그때 들어가는 거예요.
충분히 시간을 가져요.


머리를 물에 깊이 넣으려니 머뭇거렸지만 안정이 되면 들어가기로 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해도 된다는 스탭친구의 말처럼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최근에 제대로 시간을 내어 본 적이 없었다. 내 리듬에 맞춰 여유를 가지고 무언가 해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언제나 사건과 일들은 항상 들이닥쳤고, 해치우느라 바빴다. 숨을 돌리기도 전에 무언가 끝내야 했거나,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은 '지금' 있어야 할 물속에 있다고 느꼈다.


판포포구에서 첫 오리발 수영
멀리 가려면 힘을 빼요

첫 오리발 수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리발 신는 것이 어색했지만 다리를 힘차게 움직이며 훅훅 나가는 느낌이 정말 재미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발목이 아팠는데, 허벅지를 써야 했다. 또 여러 번 차는 것보단 힘 있게 한 번이 더 멀리 갈 수 있는 비결이었다. 목에 힘을 빼는 것도 중요했다. 영상을 찍어 알게 됐지만 긴장하니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목에 힘을 푸는 순간 몸 전체가 그 변화를 알아차렸다. 뻣뻣한 체면이나 위신도 다 목을 높이 치켜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 밖이나 물속이 다를 게 없었다.


제주도 바다의 첫 입수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유를 느꼈다. 불편함을 이겨내고 시작한 여정은 내게 자신감을 줬다. 판포포구에서의 오리발 수영은 첫 번째 도전에 불과했지만 멀리 나아갈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더 넓은 바다로 향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다음 입수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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