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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l 09. 2020

[주역에세이] 집콕이 미덕인 코로나 시대의 주역괘

때를 보는 도사림, 지택림(地澤臨)괘

음효와 양효의 조합으로 3획으로 구성된 8괘가 생겨남을 알았다. 그런데 이 8괘가 또 짝을 지어 6획을 이루는 64개의 괘가 생겨난다. 그 64괘 중 19번째 괘인 <지택림>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괘상을 보면 아래에는 '연못'을 상징하는 태괘(☱)가 있고, 위에는 '땅'을 상징하는 곤괘(☷)과 있다. 이 괘상의 이름(괘명)은 지택_림(地澤臨)이다. 영어로는 Nearing, Aproach라고 하는데 어디로 임한다는 것일까?


흐르지 못하고도 못하고 샘솟지도 못한 채 땅 밑에 웅크리고 있는 물의 이미지는 코로나 시국 속에서 옴짝 달싹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상황을 표현하는 것 같다. 19번 괘인 <지택림> 이야기로 시작하려는 이유다.

      



사람에게는 공부해야 할 ‘때’가 있고, 공부한 것을 사회에 펼쳐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와 개인의 인생은 그 ‘때’를 언제나 순탄하게 열어주지만은 않는다.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진 지금, 그 때를 펼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인생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암울한 시기도 활용하기 나름임을 지택림 괘는 알려준다.

   

어두운 시대, 갇힌 공간에서도 자신만의 열매를 일궈낸 신영복 선생님이 대표적인 예이다. 1941년에 태어난 신영복은 5세 때(1945년) 해방을 맞이하고 10세 때(1950년) 때 전쟁을 겪는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활동하던 중, 28세 때(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다. 48세(1988년)가 되어서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여 20년의 수감생활을 비로소 마감하게 된다.


듣기만 해도 숨가쁜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삶을 설명하는 단 몇 줄에서도 그의 인생에 담긴 시대의 어두움과 아픔을 느낄 수 있다.


20년의 빛나는 청장년기를 후미진 작은 감방에서 갇혀 보낸 신영복. 그 스스로 표현하길 ‘무엇을 도모하거나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후미진 공간’이자 ‘더불어 관계 맺기가 어려운 적막한 처소’에서 그는 한학의 대가인 노촌(老村) 이구영 선생을 옥중 스승으로 모시고 동양고전을 공부한다. 또한 옥중 서도반에서 만당(晩堂) 성주표, 정향(靜香) 조병호 선생의 집중적인 서예 지도를 받아 소주 ‘처음처럼’으로 유명한 ‘어깨동무체’를 만들게 된다.      


어두운 시대, 감옥이라는 고독한 공간 속에서 그는 성찰과 사색을 통해 ‘관계’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 결과 사람 간의 연대(連帶)를 그에 어울리는 서체에 담아냈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러 온 많은 이들을 맞이한 것은 ‘더불어 숲’이라 쓰인 연대적 내용과 그에 맞는 ‘어깨동무’ 서체의 대형 현수막이었다.



이렇듯 힘겨운 시공간에서조차 성찰을 통해 거듭나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 타의로 내몰린 격리된 공간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내면의 더듬이를 살려낸 신영복의 ‘단절’과 ‘변모’에 주목하자. 이러한 패턴의 인물을 묘사하는 괘상이 바로 주역의 19번째 괘, ‘지택림괘(地澤臨卦)’인 것이다.


‘표면’으로 상징되는 땅과 ‘심연’으로 상징되는 연못을 마음 속에 떠올려보자. 사람은 외양을 가꾸는 일 못지 않게 내면의 탐구가 필요한 시기가 도래한다. 개인적으로 그 시기는 마흔 전후가 아닌가 싶다. ‘신영복의 감옥’처럼 인물을 후미진 공간으로 몰아붙이는 힘은 ‘시대의 어두움’이었다.


시대의 어두움까지는 아니라 할 지라도 노력만으로 안되는 시기, 뜻대로 안되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런 시기가 다가올 때 우리는 알아야 한다. 땅 속으로 들어가 내면의 연못을 바라봐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즉 ‘도사림’의 시기가 필요한 것이다. 때를 살피며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한다.




나에게도 패기만만한 시절이 있었다. 마음 먹은대로 되고 뜻대로 되는 마법 같은 시절이었다. 돌이켜 보면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한 거였지만 어린 마음에 나의 추진력과 열정으로 모든 것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동쪽 산동에서 서쪽의 티벳까지, 실크로드를 넘어 파키스탄과 인도까지 여행을 하며 인생은 도전하는 자의 것임을 자신했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마주친 결핵은 악셀을 밟는 나의 발목을 잡았고, 신체적 제한으로 인해 나의 모든 외부활동은 방해 받았다.


그런 시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독서와 습작 뿐이었다. 원망과 화를 글로 토해 내며 시련과 주저앉음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기였다. 의도하지 않은 멈춤 속에서 내면의 힘을 비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 과정 속에서 나의 첫 책이 나왔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해준 남편을 만난 것도 그 비축과 도사림의 시기였다.


우리는 높은 곳만을 향해 가고자 한다. 하지만 ‘지택림괘’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가는 우리들에게 말한다. ‘낮은 곳으로 임(臨)하라’고. ‘땅 밑 연못’의 이미지에서 괘상의 이름으로 ‘임(臨)’을 이끌어낸 옛 성인의 가르침을 생각할 일이다.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러한 딴지조차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때가 아님을, 도사림이 필요한 지택림의 시기임을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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