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DNA를 가진 그대는 바람을 상징하는 '손괘'여라
우리 한의원의 이름은 남편의 '호'를 따서 만들었다. 주역의 대가 대산(大山) 김석진 선생님께서 내려주신 호이다. '마땅할 의(宜)', '어질 인(仁)'으로 '의술을 가진 의사로서 인술을 베푸는 것은 마땅하다'는 뜻이다. 한의원 이름의 뜻을 물어보는 환자분들이 계시다 보니 주역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주역을 외운 한의사'로 알려지다 보니 맥을 잡으며 점을 봐달라고 하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한의사마다 진료 방향은 다른 바, 남편은 진단함에 있어서 어떤 카테고리로 나누는 것은 참고는 하되 그 자체가 덫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양인이라고 하니 뭐는 맞고 뭐는 맞지 않을거야'라는 식의 사고는 치료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마치 혈액형이나 별자리처럼 본인이 어떤 체질에 속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사상체질, 팔체질은 그런 면에서 사람들의 흥미를 돋는 것이 사실이다.
치료를 함에 있어서 사상체질, 팔체질이라는 잣대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자신이 어떤 유형에 속하는 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만물의 유형을 담은 8괘는 인간유형에도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유형이고 주변인은 어떤 유형인지 그로 인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조화를 꾀할 수 있는지 살펴 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괘는 일종의 상징이고, 나를 상징기호로서 파악 또는 표현 한다면 어떤 괘상이 적합할 지 살펴본다면 괘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사상체질, 팔체질로 사람의 체질을 분류하듯 나의 상징 또한 4괘, 8괘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번에는 태극기 덕에 비교적 친숙한 건/곤/감/리를 살펴 봤다. 이제 태/진/손/간을 살펴볼 예정이다.
연못을 상징하는 태괘(兌卦)
☱ '연못'을 상징하는 태괘(兌卦)는 1층과 2층에 차례대로 양이 쌓여 있고 3층에 음이 있다. 연못은 아래가 막혀 있고 위로는 물을 담는 성격을 갖고 있다. 양효(이어진 선) 2개가 1층과 2층에 바리케이드처럼 놓여 있으니 물 샐 틈 없는 그릇을 상상해도 될 것이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을 떠올려도 될 것이다.
지인 중에 모든 스트레스를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는 분이 계셨다. “내 마음을 꺼내서 짜면 아마 물이 엄청 많이 나올 거야”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 표현이 참 시적이라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 분 스스로의 스트레스나 화병은 있을지언정 그 분 덕에 집안의 평화와 질서는 잡히고 있었다. 화가 많은 남편, 우왕좌왕하는 아들을 그 분의 마음 속 그릇에 넉넉히 품고 있는 것이다.
모든 요동과 변덕을 담고 있는 고요한 연못을 표현하는 이 괘의 이름은 태괘(兌卦)이다. ‘기쁠 태(兌)’인데 한자의 느낌은 마치 우는 것 같다. 이 한 몸 참으면 애브리바디 해피하다는 뜻일까. 주변에 이런 연못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덕에 모두가 기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터이다. 개인적으로는 내 곁을 '오래' 지키고 있는 지인유형은 모두 '태괘'에 속하는 것 같다. 나를 품고 있는 연못같은 그릇이다.
우레, 진괘/ 震卦
☳ 우레를 상징하는 진괘(震卦)는 음효(끊어진 선)가 2층과 3층에 2개나 힘겹게 버티고 있다. 아래에 있는 양의 기운이 지면(地面)의 음기를 뚫고 나오는 모습을 본뜬 것으로 그 힘찬 움직임 때문에 움직일 동(動)의 의미가 두드러지며 우레(雷)의 성격을 나타낸다. 이 괘상의 이름인 진(震)은 우(雨)와 진(辰)의 합성어인 우레가 쳐서 사물을 진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잠재력이 가득한 사람, 역동성이 가득한 사람을 상상해도 좋고 소리는 요란하되 결과는 파괴적이기도 한 모습을 떠올려도 좋다.
바람, 손괘/巽卦
☴ '바람'을 상징하는 '손(巽)괘'는 음효(끊어진 선)가 1층에 있으니 딱 봐도 아래 부분이 새고 있다. 그 틈으로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것 같아 배낭을 매고 길 위를 하염없이 걷는 여행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바람과 길 먼지가 느껴지는 이미지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괘이다. 또는 2층과 3층에 있는 양의 기운을 온 세상에 흩뿌리는 바람을 상상해도 좋을 것이다.
신화의 인물로는 경계를 넘나들며 바람과 같이 왔다 바람과 같이 가는 헤르메스, 한 공간에서의 보물이나 좋은 소식(양의 기운)을 다른 곳에 전해주는 사람으로 생각해도 좋겠다. 손괘는 8괘 중 가장 좋아하는 괘라 나의 명함에도 손괘를 삽입하였다. 바람 빠진 풍선마냥 아래는 뿌리가 아닌 틈새가 있지만 그 틈새 덕에 날아다니는 형상, 유목민의 형상이 마음에 든다. '글'은 꼭 물리적 공간만을 이동하는 것은 아니므로 글을 쓰고 읽음으로써 떠돌아 다닐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런 점에서 작가라면 '손괘'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산, 간괘/ 艮卦
☶ 산을 상징하는 간괘(艮卦)는 1층과 2층에 있는 2개의 음 위에 양이 지붕처럼 덮고 있다. 무언가를 덮고 있는 형상은 ‘멈춤’을 떠올리게 한다. '그대로 멈춰라!'하며 양효(이어진 막대기)가 2개의 음효를 덮고 있다. 파멸을 향한 진보를 경고하는 하늘의 뜻에 따른 위대한 멈춤일 수도 있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위한 전략적 멈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때를 보아가며 머물러 힘을 기르기 위한 멈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멈춤이 가능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지원하는 든든한 자연의 산을 상상해보자.
이렇게 주역의 기본 8가지 단어라 할 수 있는 8괘를 살펴보았다. 스스로와 주변인에게 적용하여 살펴 본다면 상징을 파악하기 더 쉬울 것이다. 나는 손괘(바람)이고 나의 절친은 태괘(연못)이다. 그 친구는 나의 모든 변덕과 화를 받아주는 연못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변비가 있고, 모든 걸 발산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장이 민감하여 설사가 있다. 맨 밑이 막혀 있고 뚫려 있는 괘의 모양과는 우연의 일치일까.
주역은 만물의 뜻과 성질을 괘상에 담아 표현한 것이기에 하나의 괘상에 수없이 많은 뜻이 담겨 그 함축성과 상징성의 농도가 매우 짙다. 그 어느 시(詩)보다 더욱 진할 수밖에 없는 상징언어인 주역을 통해 이제 우리는 조상들이 들려주는 시를 읽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갖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