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보약 십전대보탕
내 인생의 사부님께, 어르신 보약 십전대보탕
“리아씨, 독문학 전공이라 하셨죠? 아버님 유품을 정리 중에 <파우스트> 독일어 원본이 있어서요. 생전에 가장 좋아하시던 책입니다. 혹시 관심 있으십니까?”
2017년 5월 15일 인생의 사부님으로 모셨던 전성수 약사님께서 향년 81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이후 약사님의 유품을 정리하던 아드님께서 독일어 원문으로 된 괴테의 <파우스트>를 갖고 가라고 연락을 주셨다.
전성수 약사님은 평생을 약학공부와 약품개발에 몰입하셨던 분이었다. 한독약품의 훼스탈에 맞선 대웅제약의 베아제를 만든 장본인이자 한국 내 약품개발의 개척자라 할 만한 분이다. 헬스케어 쪽으로 경력을 시작하게 된 나는 2002년 우연히 업계에서 전성수 약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1937년 생이시니 당시 66세셨다.
전약사님과의 미팅은 비즈니스 미팅이라기보다는 신나고 열정적인 수다 대잔치였다. 약품을 가지고 그렇게 재미있게 몇 시간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약사님에게 배움은 놀이이고 개발은 사명이었다. 요새는 온라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의학 저널이 1937년 생인 약사님 시절에는 쉽지 않았던 일이다. 의약학 저널을 번역요약해서 당시 군의관들에게 전달하는 업무를 하셨다는데, 제대 날짜가 다가오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단다.
‘제대하면 이 저널들을 못읽을텐데...’
급기야 3년의 군복무 기간을 5년으로 연장했다고 하니 배움의 열정에 대해 더 이상 들먹일 에피소드가 없다. 대웅제약에 몸 담으면서 약품 개발만이 아니라 네이밍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하셨다. 우루사, 베아제, 곰실린 등의 약품이 모두 그 분에게서 나온 것이었고 네이밍 역시 그 분의 작품이었다.
“약품명에 다 곰이 들어가네요?”
“대웅제약이니까. 그런데 지미코는 곰이 들어가지 않지요”
“지미코도 부사장님이 만드신 거예요? 그건 왜 지미코예요?”
“내가 축농증도 심하고 코감기로 고생을 많이 해서 콧물시럽약을 만들었는데 이름을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었거든. 마침 당시에 김지미가 인기가 좋았어. 그래서 지미코로 했지.”
그렇게 즉흥적이고 독창적이고 성실한 분이셨다. 결혼 후에도 인연은 이어졌고 한의사인 남편이 양약의 약리기전도 공부하는 게 좋겠다 싶어 약사님을 모시고 함께 수업을 받기도 했다. 어떤 자격증도 학위도 주어지지 않았던 1년 간의 수업은 지금 돌이켜봐도 아름답고 감사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수많은 약품을 개발한 약사님께 남편은 물었다. 그렇게 좋은 약들을 개발하실 수 있는 비결이 뭐였는가 하고.
“하루 종일 환자만 생각하십시오. 밥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그 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의 마음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반드시 그 환자를 위한 약을 개발할 수 있게 됩니다.”
첫 수업 때 하신 말씀이다.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고 처방은 다음에 착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특정 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양약의 개발도 그러할진대 환자 한 명을 위한 맞춤처방을 내리는 한의사야말로 더 깊이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었다. 약사님의 부친 또한 일찍이 한의사였기에 그 분은 양방과 한방에 두루 두루 조예가 깊으셨다. 전성수 약사님의 수업과 함께 남편의 처방도 그 범위가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
귀가 많이 어두우셨기에 목소리는 쩌렁쩌렁 하셨다. 몇 시간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가르치시던지 저러다 쓰러지시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수십 명 수백 명도 아니고 단 두 명의 학생들을 앞에 두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시는 것이 아닌가 싶어 죄송스럽기도 했다. 걱정되어 말씀드렸더니 당신의 소원은 마지막 순간까지 침을 놓았던 허준처럼 강의를 하다가 죽는 것이라 하셨다.
내 인생의 사부님, 5월 15일 스승의 날, 인생의 마침표를 찍으시다.
약사님은 평소 말씀대로 2017년 5월 15일 마지막 강의를 앞두고 돌아가셨다. 그 날도 다른 날과 다름 없이 샤워를 하고 강의를 하러 나가시려던 참이었다고 한다. 목욕재계를 하시고 소천하신 것이었다. 단 하루도 병상에 앓아 눕지 않으시고 말이다. 거짓말처럼 스승의 날에 돌아가셔서 얼마나 황망했는지. 하지만 인생을 그 분의 성(全)처럼 온전하게 살아가셨기에 여한은 없으셨을 거라 위안했다. 정말이지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꽉 채우고 가셨다.
인생을 온전하게 사신 어르신께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
생전에 우리는 전약사님께 몇 차례 한약을 지어 드렸다.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이었다. '열 가지 약재가(十) 온전하게(全) 들어가 크게 몸을 보한다(大補)'는 뜻으로 어르신들의 전반적인 기력회복에 좋은 처방이다. 약사님의 약을 지어 드리기 위해 우리는 메일로 상담을 했다. 귀가 어두우셨던 까닭이다. 그 메일의 내용이 마치 유산처럼 남아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수면, 잠은 항상 모자라지만 이는 내가 자청해서 안자는 것이며 눈만 감으면 잠을 잡니다. 다리 아픈 것은 운동부족으로 근육이 없는 상태에서 당뇨병으로 인한 발바닥의 부분적 마비 증세때문이며 이는 매일 운동량만 늘리면 개선되는 병입니다. 마비 상태는 제가 혈당만 조절 잘하면 악화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전약사님 처방에는 십전대보탕의 10가지 약재에 맥문동, 산약, 구기자, 오미자, 사인, 우슬 등 6가지 약재가 가미되었다. 원래 십전대보탕은 약간 열성이라 부작용이 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 한다. 전약사님 상황에 맞게 몇 가지를 가미해서 밸런스를 좋게 하였다. 열심히 살아오신 모든 어르신들, 그만큼 부족해진 기와 혈을 두루두루 크게 보하는 십전대보탕이야말로 노년의 완성을 위해 힘쓰는 어르신들의 대표보약이라 하겠다.
궁금한 게 있어 메일을 드리면 항상 정성어린 회신을 해주셨던 전성수 약사님. <시네마 천국>에서 편집된 키스씬을 보며 눈물 흘리던 토토처럼 한동안 전약사님과 주고 받은 메일을 읽으며 그 분을 추억했다. 전약사님의 아드님은 부친의 성함 -전성수(聖樹)- Holy Tree라는 브랜드로 사업을 론칭하셨다. 믿음, 소망, 사랑의 나무이기도 하다. 부친의 성함과 기독교의 믿음을 담은 브랜드. 전성수 약사님이 이 브랜드로 다시 부활한 것만 같다.
기억나는 것은 Guten Tag과 Ich liebe dich 뿐이거늘, 독문학 전공이라고 내게 온 전성수 약사님의 유품 <파우스트>. 독일어로 읽을 엄두는 나지 않지만 말년까지 대작을 완성한 괴테의 삶과 전성수 약사님의 삶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전에 약사님께 약을 지어 드릴 수 있었음이 다행이다. 마지막까지 약품개발과 강의를 위해 주어진 에너지를 아낌없이 쓰신 분, 그 분의 몸을 크게 보하는데 십전대보탕이 한 몫 했으리라 위안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