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정과 노인정 사이
우리 집, 아니 우리 엄마가 있는 곳은 언제나 동네 사랑방이 되곤 한다. 말을 전하지 않고 어떤 얘기든 잘 들어주는 우리 엄마는 동네에서 제법 인기가 있었고 덕분에 우리 가게는 사랑방 마냥 동네 할머니들의 집합소가 됐다. 가끔 나타나 감초 역할을 하는 아빠가 할머니들을 한바탕 웃겨주기 까지 했으니 인기가 식을 날이 없었다. 나 또한 어릴 적부터 엄마와 있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 자리에 함께하며 동네 돌아가는 소식을 빠삭하게 꾀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마치 내가 NPC라도 된 것처럼 내 앞에선 무슨 이야기든 거리낌 없이 했다. 나는 관심 없는 척 듣고 있다가 할머니들이 가면 엄마에게 이것저것 소상히 물어보며 이야기를 꾀어 맞추곤 했다. 어쩜 이 작은 동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이 터지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사랑방은 여전히 운영 중인지라 지금도 이태원에 무슨 일이 생기면 대부분 3일 안에 그 내막을 알 수 있다.
우리 가게가 사랑방이 된 데에는 엄마만큼이나 위치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가게가 동네 사거리에 위치해 있는 데다 마을의 노인정 두 곳 딱 중간에 있어서 인지 할머니들이 모이기가 유독 좋았다. 우리 동네에는 한 500m 거리를 두고 노인정 두 곳이 자리 잡고 있다. 각자 이름이야 따로 있지만 동네에선 할머니 노인정, 할아버지 노인정이라고 불린다. 그렇게 불린다는 걸 알게 된 건 몇 년 안 됐는데 처음 듣고 참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 나이가 되어서도 서로 어울려 놀기 싫어하다니. 하긴 우리 동네 어르신들을 생각해보면 할머니들 텐션을 할아버지들이 따라가기 버거울 수 있다. 요즘은 많이 노쇠해지셔 마음이 아프지만 우리 동네 할머니들 꽤 포스 있으셨다. 다들 굉장히 호쾌하신 편이랄까(돈도 많으시다, 존경). 어쨋든 노인정이 따로 있어도 진짜 동네 돌아 가는 이야기는 우리집에서 나눠지곤 했다. 본투비 집순이인 우리 엄마는 365일 그 자리에 있었음으로 사랑방 주인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들은 우리 가게에 술과 담배를 숨겨두고 몰래 유흥을 즐기다 가시곤 했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말보로 골드를 피셨던 것 같다(88이었나). 당시까지만 해도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건 금기시하는 분위기였어서 그런지 할머니들이 담배 피우는 모습이 뭔가 멋져 보일 때도 있었다. 할머니들은 본래 거침없는 입담을 가지셨지만 술이 들어가면 정말 거칠 것 없어졌다. 발그레해진 볼로 기분이 좋아지셔 다들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가끔은 술이 술을 부른다고 내게 술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셨다. 다만 중간에서 주량을 조절하는 건 온전히 엄마의 역할이었다. 조절을 잘 못했다가는 다음날 할아버지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기에 엄마는 적정선에서 할머니들을 돌려보내야 했고 나는 할머니들과 엄마의 중간에서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심부름을 갈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귀찮았지만 잔 돈은 내 용돈이 될 테니 심부름 가는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다.
가끔은 할머니들이 너무 자주오시는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분들의 텐션이 부담스럽기도 했으나 돌이켜보면 재밌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아,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도 술 한 모금 없이 술 자리에서 잘 버티고 앉아 있나 보다. 어릴 적부터 훈련된거였어..이제야 깨닫는다). 잔소리 속에 섞인 애정도 좋았고, 옛날 얘기도 흥미로웠고, 맛깔진 남에 욕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동네에서 인사하는 유일한 아이라며 매번 빠짐없이 칭찬해주는 말 속에 진심이 느껴져서 좋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정을 잘 모르고 자란 내게 정이란 걸 느끼게 해주신 분들이다. 요즘도 가끔 할머니들은 우리 가게에 모여 술 한잔을 걸치신다. 여전히 귀엽게 발그레해진 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걱정되는 마음 한편에 정겨운 마음이 피어오른다. 술이 취하면 우리 아빠를 곰돌이라고 부르는 것도 매번 빠짐없이 내 칭찬을 해주시는 것도 이제는 자주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아쉬워진다. 다들 오래오래 사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