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우는 아침부터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카페 바닥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화장실도 점검했다.
"화장실은 쾌적한 상태가 되어야 하네."
강변 카페 전 주인은 화장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강변을 잇는 도로에는 마땅한 휴게소가 없었기에 커피 보다 화장실이 다급해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며. 비록 일회성 방문이라 해도 기분 좋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골손님한테도 커피 맛과 신뢰성을 높여준다 덧붙이면서.
연우는 청소를 끝내고 나서 우유와 원두를 보충했고 에스프레소 머신 예열도 마친 후에 늦은 아침을 해결했다. 회색빛 승합차 한 대가 주차장에 들어선 건 잠시 휴식을 취할 때였다. 40대 초반의 여자와 30대 중반의 남자가 차에서 내려 카페로 향했다. 연우는 한눈에 둘의 정체를 알아봤다. 여자는 반려동물 장례지도사였고 남자는 운전기사인데 가끔씩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영신이 말했다.
"어서 오세요"
연우도 반갑게 맞이한다. 영신을 뒤따르던 용섭과도 가볍게 눈인사를 교환했다.
햇볕이 뜨거워지는 정오쯤에 두 사람이 카페를 찾은 건 연우의 기억 속엔 오늘이 처음이었다. 둘은 반려동물 화장터가 없는 도시로 출장 가서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나 고양이 주검을 인계받아 대신 화장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카페를 찾을 때는 뜻하지 않는 연유로 시간이 지연되거나 자신들 거처로 복귀하는 도중에 졸음을 쫓기 위해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이 시간 카페 방문은 예정에 없었다.
2.
영신과 용섭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과 샌드위치 1인분을 주문한 후에 창가에 있는 파란 패브릭 소파에 몸을 맡겼다.
"식사나 할까 그랬어요?"
각진 턱에 까칠한 수염을 한 용섭이 침묵을 깼다.
"이따 장례 치를 때 식사 챙겨요."
영신의 단호함에 용섭은 체념하 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는 용섭의 불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장례 일정에 맞춰 이른 점심을 끝냈고 용섭은 그러지 못했다. 오늘 오전에 잡힌 장례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용섭은 곧 어느 식당에 한 자리를 차지했으리라. 영신은 어중간한 시간에 장례가 잡힌다면 식사는 서둘러 해결하자고 예전부터 당부했다. 용섭은 영신의 부탁을 번번이 어겼고 그녀 입장에선 불쾌한 부분이었다.
장례일을 하다 보면 예측불허 순간이 찾아온다. 원래는 지금 쯤 죽은 반려견을 인계받아 한창 화장터로 향했을 시간이었다. 강아지 장례를 의뢰한 사람은 젊은 직장인 여성인데 아침에 깨어보니 시름시름 앓던 푸들이 죽었다고 했다. 부랴부랴 하루 결근을 신청하고 늙은 개의 마지막 길을 지켜주고자 했지만 직장상사로부터 다급하게 자기를 찾는 전화가 왔다. 10평 남짓 원룸에서 혼자 살던 여자는 상사의 호출을 뿌리칠 수 없었는데 그 업무가 자기만이 처리할 수 있다는 상사의 지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영신 일행은 강변 카페에 다다를 무렵 원룸 여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직장에 문제가 생겼다며 약속했던 만남을 두 시간 정도 연기 가능한 지 문의를 받았고 영신은 난감했지만 여자의 사정을 받아들였다. 그로 인해 푸들의 주검 인계는 연기되었고, 뜻하지 않은 시간의 공백을 메우고자 강변 카페를 찾았다.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용섭이 의중을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했을 때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샌드위치가 준비 됐다고 탁자 위 벨이 요동쳤다.
초가을 낮에도 뜨거운 열기가 가득해 용섭은 한 잔의 커피가 주는 청량감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샌드위치로 허기도 달래고 있어 영신은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용섭은 자신과 같은 일에 몸담았고 그가 좋은 컨디션으로 직분에 임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커피 맛은 별로였다. 영신은 강변 커피가 변했음을 느꼈다. 얼마 전만 해도 강변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건 물론 커피 맛도 좋았는데 주인이 젊은 사람으로 바뀌고 나서는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 젊은 주인? 그렇다면 예전엔 늙은 사람이 주인이었나. 기억난다. 중년의 남자가 카페에서 혼자 커피 내리던 모습을. 남자는 더우나 추우나 일 년 내내 밤색 베레모를 쓰고 있었고 언뜻 모자 사이로 흘러내린 백발을 염두하면 생각보다 나이가 더 많을 수도 있었다. 그 무렵 젊은 사람이 나타나 한동안 함께 일하길래 새로 고용된 직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젊은 사람 혼자 커피를 내렸다. 카페의 주인이 새로 바뀐 듯했지만 젊은 주인은 베레모 쓴 남자의 커피 뽑는 솜씨까지는 완벽히 전수받지 못했나 보다. 독특했던 커피 향은 어디론가 날아갔고 깊었던 맛은 다소 밋밋해졌다. 그래선지 카페를 찾다 보면 손님들 숫자가 줄었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영신은 강변 카페를 계속 찾았다. 카페가 선사하는 정서적 안정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또 하나, 젊은 주인과 대화를 한 번쯤 나눠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젊은 주인은 상대방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3.
연우는 카운터에서 간혹 영신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카페를 정기적으로 찾는 몇 안 되는 단골이다. 영신과 용섭의 정체를 모른다면 얼마든지 삐딱하게 볼 수 있는 외떨어진 강변의 남녀 간 조합이었다. 영신은 서른 중반으로 보였지만 더 나이가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자로선 약간 큰 키에 눈길을 끌만한 매력적인 용모를 지녔는데 이십 대 시절엔 지금 연우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한 찬사를 받았을 것 같았다.
맞은편에 앉은 용섭은 짧은 턱수염이 한눈에 띄었고 얼굴에 포인트로 삼으려 했는지 게으름의 대가였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영신과 동갑처럼 보였지만 간혹 그녀한테 경대하는 걸 염두하면 부하 직원이거나 나이 차가 있거나 그 둘 다 해당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영신은 연우로 하여금 아주 오래전에 알고 지냈던 어떤 여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그녀를 우연히 마주친다면 저 소파에 앉아 있는 영신을 닮아 갈지도 몰랐다.
한 밤엔 의식을 못했던 얼굴이 지금은 자기도 모르게 눈길이 갔을 때였다. 영신이 소파에서 일어나 카운터 쪽으로 다가왔다. 순간 연우는 물건을 훔치려다 들킨 도둑 마냥 움찔했지만 그녀의 온화한 표정에서 별일은 아니겠다 싶었다.
"카페가 평온하네요."
"네."
연우가 일어나며 겸연쩍게 대답했다.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살짝 당황스럽다. 손님과 지금과 같은 대화는 낯설었다. 영신이 추가 주문이라도 하는지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나.
"저번 폭우 때 강물에 휩쓸렸던 자동차는 어떻게 됐을까요?"
영신의 뜬금없는 질문포에 연우는 또 한 번 당황했고 이번엔 어이가 없었다. 뇌리에서 지우고 싶은 사고였는데 다시 들추는 건 무슨 심보인가. 생각해 보니 폭우가 내리던 그날 밤에도 영신 일행이 카페를 찾았던 것으로 기억났다. bmw가 강물 속으로 휩쓸렸던 참극은 코앞에서 목격하지 못했겠지만 부랴부랴 신고를 하던 연우의 정신줄 놓은 행동은 지켜봤을 것이다.
"아직 자동차나 사람을 찾았다는 소식은 없네요."
"그래요! 누군지 몰라도 참으로 안 됐어요."
영신은 진정으로 안타까워했고 연우도 충분히 공감했다. 더구나 자기가 운영하던 카페 주차장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직접적인 책임은 아니더라도 왠지 모르게 죄책감은 들었다. 여름 내내 이어지던 장맛비를 염두했다면 한 번쯤 약해졌을 지반을 점검해야 했다. 결국 자기 눈앞에서 자동차가 땅 밑으로 푹 꺼진 걸 보았는데 어떻게 쉽사리 잊겠는가. 잠잘 때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다면 다행이었다. 그만큼 잊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영신이 그날의 사고를 들쑤시니 온갖 감정이 난무하면서 내심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영신은 손님이었고 악의 없는 궁금증을 표출한 것에 불과하다. 좀 전까지 그녀한테서 지난 시절 알고 지냈던 여자를 떠올리지 않았던가. 그렇듯 영신이 더 이상 그날의 사고를 들추지 않는다면 당장에 우호적인 감정으로 돌아가리라.
"저기 뭉크의 그림 맞죠?"
영신이 주방 벽면에 붙어있는 액자를 발견하고 말했다.
"네."
"카페랑 별로 어울리지는 않네요."
"어떤 점이 그런가요?"
"으스스하잖아요. 커피 맛이 날까요?"
연우는 그녀의 지적에 수긍하면서도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절규>를 주방 쪽으로 자리를 정하면 손님들 시야에서 비켜갈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나 보다. 다행인 점은 영신도 그날의 사고에 대해 더 이상 입 밖으로 내뱉을 의사가 없어 보였다. 연우가 카페 주인으로서 대화의 주도권을 되찾을 순간이기도 했다.
"혹시 뭐 원하시는 것이라도?"
연우가 이러저러한 메뉴를 염두에 두고 말했다. 반면에 영신은 망설였고 용섭이 앉은 소파 쪽을 목적 없이 쳐다보기도 했다. 남자는 졸고 있는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네요."
영신이 말문을 열었지만 주저하는 태도는 여전했다.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네. 뭐 좀 허락받을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인 데요?"
연우의 물음에 잠깐 뜸 들이던 영신이 마침내 결심을 했고, 연우는 그녀의 결연한 표정에서 지난 날 만났던 여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결정 앞에서 위아래 입술을 지그시 깨물던 그 모습을.
4.
언제였던가. 먼 산 산등성이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파동처럼 이어졌던 지난해 겨울이었나. 세상이 꽁꽁 언 듯 한 아침나절이었지만 동시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머리 위로 반짝였다. 그때 예순이 넘은 여인이 장례식장 안으로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밭일이라도 했는지 신발엔 진흙이 달라붙었고 두꺼운 잠바도 닳고 닳아서 남루했다. 여인은 가슴에 보자기를 품고 있었는데 갓난아기라도 안은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이 아이를 곱게 보내고 싶소."
여인이 탁자에 풀어헤친 보자기에는 고양이가 죽은 채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체구가 작아 새끼인 듯 보였지만 여인의 초라한 행색처럼 집고양이 치고는 거친 털 하며 몹시 더러웠다.
"키우던 고양이가 죽었나 봐요?"
영신은 당연히 그럴 것이 생각했다.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위로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슬픔에 잠겼을 여인을 생각해 감정의 과잉 노출은 삼갔다. 여인은 고양이와 살면서 온갖 정이 들었기에 단순히 말 못 하는 동물의 죽음만이 아니리라. 화장을 앞두고 보내는 자의 슬픔은 자신의 몫이 아니었고 여인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별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죽은 고양이를 안고 장례식장을 찾은 여인의 행동은 어딘가 달라 보였다.
"땔감을 구하려고 야산을 뒤지다가 고양이가 죽은 걸 발견했소. 그냥 놔두기가 너무 불쌍해 화장이라도 치러줄까 해서 데리고 왔다오."
"기르던 고양이가 아니었어요?"
"그렇다오."
"장례비가 적지 않게 들 텐 데요."
"어떡하겠수. 이다지도 불쌍한데."
그러면서 여인은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만 원권 지폐를 탁자에 늘어놓았다.
"내가 가진 것 전부라오. 모자란다 해도 죽은 아이를 생각해서 내 염치 불고하고 부탁 좀 하리다."
여인이 꺼낸 돈은 10만 원이 채 안되었다. 장례 절차를 아무리 간소화해도 최소 비용이 20만 원이었다. 영신은 탁자에 놓인 지폐와 여인의 초라한 행색을 번갈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여인의 형편으로 볼 때 비상금을 탈탈 털은 듯 보여 장례비를 더 받아 내기는 어려웠다.
5.
영신은 그 겨울 아침 뜻하지 않게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여인을 죽은 고양이와 함께 돌려보낼 것인가, 아니면 손해를 보더라도 장례를 치를 것인가. 전자는 금전적 손해는 없겠지만 장례지도사로서 자격이 있을까 스스로 괴롭힐 수 있다. 더구나 여인의 간절함에 무작정 거절하기도 꺼림칙했다. 여인은 돈보다 한 생명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어떤 근원적인 부분을 건드렸다. 여인의 행동은 흔히 접하는 일상이 아니었고 마음을 움직이는 자극이 있었다.
영신은 결국 고양이 장례를 치렀다. 모자란 비용은 자기 월급으로 충당하리라. 빳빳해진 고양이 사체를 물수건으로 닦은 후 한지를 자르고 접으며 온몸을 정성스럽게 감쌌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영신이 해왔던 장례절차였고 그나마 간소했지만 그녀는 느꼈다.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히는 것을. 왜 그랬을까?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이윤을 떠나서 처음으로 장례다운 장례를 치른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죽은 고양이의 짧지만 고단했던 삶이 의식의 흐름 어딘가서, 죽은 영혼의 소리 없는 외침이 찌릿하고 전율을 일으키다 알 수 없는 슬픔을 남기고 사라진 것 같았다. 초겨울 아침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며 떠난 여인과 함께.
문제는 그 후부터였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장례 출장을 나가다 보면 도로 위에 처참하게 죽은 고양이가 눈에 띄곤 했는데 무심하게 외면할 수 없어 운전을 하던 용섭의 불만을 달래며 사체를 수습했다. 그렇다고 장례까지 치르기엔 현실적으로 비용 감당이 안돼 어느 야산에 묻기도 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이 큰 부담이었다. 실제로 오해를 사서 경찰이 출동한 때도 있으니까. 종량제 봉투에 담아 일반 쓰레기처럼 버리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제가 하는 일 탓인지 길고양이 사체를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이따금 받아요. 어떤 분은 죽은 고양이가 불쌍하다며 자비를 들여 장례를 치러달라 했고요."
영신은 말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연우는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묵묵히 듣고 있다.
"하지만 죽은 길고양이를 화장터에서 처리하기엔 비용 부담이 너무 커요. 결국은 인적이 뜸한 산속 같은 곳에 묻어줄 수밖에 없는데 그 일도 쉽지가 않죠.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6.
연우는 그녀한테서 뜻밖의 부탁을 받았다. 너무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는데 뭐라고 했더라. '이 근처 야산에 길고양이 사체를 묻을 수 없을까요?'라고 했던가. 연우는 처음에 영신이 했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때문에 즉각 거절하지 못한 게 후회됐다. 멈칫하는 연우를 보며 용기를 얻었는지 영신은 한층 자신감 있는 어조로 설득을 거듭했다.
"카페에서 멀리 떨어진 야산에 묻을 게요. 장사하시는데 정말이지 조금의 피해도 없을 거예요."
연우는 난감했다. 카페를 둘러싼 야산은 자기 소유의 땅이 아니었다. 이 일대 야산은 가늠할 수 없는 넓은 영역이다. 그녀는 알고 있다. 연우가 주인은 아니지만 눈감아 준다면 야산은 죽은 고양이들 안식처가 된다는 것을. 카페는 강물을 끼고 남양주에서 춘천으로 이동하는 경춘국도 중간 지역쯤에 홀로 동떨어졌다. 카페 앞은 강물이 흐르고 좌우로는 야산이었으며 카페 왼쪽으로 승용차 스무 대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었다. 카페 뒤 차도를 건너 야트막한 산에는 소나무와 형형색색 야생화들로 드넓게 펼쳐졌다. 영신은 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이름 모를 산속에 비참하게 죽은 동물들을 묻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야산에 묻는 것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연우가 미심쩍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만약 무슨 문제가 생긴다 해도 사장님한테 피해 가지 않도록 할게요."
영신은 일절 망설임도 없이 대꾸했다. 연우는 어떻게 대처할까 고민했지만 영신의 부탁을 거절할 만한 핑계는 생각나지 않았다. 연우도 자동차를 운전할 때면 도로에 끔찍하게 로드킬 당한 동물을 목격했으며 유독 고양이가 많았던 게 기억났다. 그럴 때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그렇듯 영신이 찢기고 짓이겨진 사체를 수습해 야산에 묻어준다니 오히려 독려받을 행동이 아닌가 싶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연우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지난날 자신도 불빛 없는 도로에서 거의 죽을 뻔했던 길고양이를 살리는데 부지불식간에 돕지 않았던가.
"잠깐 시간 좀 주세요."
연우가 말했고 영신은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결국 연우가 부탁을 수락한다는 걸 그녀의 미소 띤 얼굴은 아는 듯했다.
그리고, 영신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 팠다.
"혹시 요즘에 이상한 일이 생기지 않았나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영신은 정색을 하며 일행이 있던 자리로 돌아갔지만 연우는 멍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