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변에 온 후 아침 시선은 으레 물 위로 떠오른 여명을 쫓았지만 올여름 이후로 그 같은 의식은 외면받았다. 카페 이층에 마련된 잠자리는 불편했어도 연우에겐 영혼의 안식처 같은 보금자리였다. 잠이 덜 깬 채 이층 테라스 안락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과 강변을 음미하던 아침은 사라지고 마냥 침대에 누워 불길한 상상을 그릴뿐이다.
카페는 오전 동안 대체로 한가했다. 세상이 멈춰버린 듯 적막한 하루의 일부였고 도시적 소음은 애초에 숨을 죽였다. 도시생활에서 습관처럼 가졌을 조급증 따위도 얼씬대지 않았다. 가까이 아니면 저 멀리 자연의 떨림만 잃어버린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도록 종용하는 것 같았다. 바위에 부딪치고 부대끼는 물살의 울림이 강물을 따라 퍼졌고 나무와 잡풀들 속에서 울어대는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도 귓속을 파고들었다. 강변의 일상적 틀에 녹아든다면 자연의 소리에도 동화되어 아예 시간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을 마주할지 몰랐다.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계가 연우의 생활 속으로 조금씩 들어왔다. 저 깊은 심연 속 꼭꼭 잠겄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면 새로운 세계는 바로 그 문 앞에 있었다. 매일 보는 둥근 나무 탁자하며 의미 부여도 난해한 조각 작품들. 아니 카페 인테리어를 위한 장식품이라는 표현이 더 합당했다. 거리에 진열된 물건들을 찰나적인 미적 영감을 받아 충동적으로 끌어모은 결과물들.
매번 마주하는 익숙함 속에서 엉뚱한 짓거리를 했는데 이를테면 인간의 형상을 한 조각품에 나름 의미 부여도 시도했다. 짙은 갈색에 머리카락이 있는 듯 없는 듯 인간을 닮은 조각품은 나란히 서 있는 것일까 미래를 향해 걷고 있는 것일까 그 미래는 밝을까 어두울까 모자간일까 부자간일까 연인일까 하고 잡다한 망상에 빠지곤 했다.
2.
벽에 걸린 뭉크의 <절규>는 더욱 극적이었다. 컬러 인쇄기로 출력된 복사판을 액자에 담았는데 대학 친구 준식이 선물했었다.
"그곳에서 외롭다고 느낄 때 풀어보길 바란다. 꼭~"
<절규>는 연우가 도시생활을 접고 강변으로 이사 간다고 알렸을 때 준식이 배신감을 느낀다며 장난스럽게 건넸다. '외롭다고 느낄 때 풀어 봐'를 강조하면서. 연우는 강변에 온 후 당장에 선물을 개봉하지 않았다. 외롭다고 느껴 풀지도 않았다. 강변에 이사 오고 한 달이 지날 무렵 무심코 한쪽 구석에 남모르게 자리를 차지하던 포장지를 발견하고 '뭐지?' 하는 호기심으로 풀었을 뿐이다.
<절규>는 그렇게 연우와 마주쳤고, 아주 짧은 시간에 준식의 의중을 간파하고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절규>는 진하고 강한 색채를 배경으로 귀를 막은 건지 쫑긋 세운 건지 모를 유령 같은 형상이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었다.
준식은 연우의 강변행을 줄기차게 만류했다. 사실을 밝히자면 연우의 부모보다 녀석을 이해시키는 게 더 어려웠다. 녀석은 연우의 결정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다. 오히려 연우가 카페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하며 설득시키려 했으니까. 그런 점에서 연우는 새삼 부모님이 고마울 정도였다.
아, 부모님. 연우가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를 하겠다고 처음에 밝혔을 때였다. 아버지는 '허허'하고 별달리 할 말이 없으면 보이던 특유의 반응을 입버릇처럼 뱉은 게 전부였다. 반면에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눈빛은 걱정, 한심, 안타까움, 체념, 자식 놈한테서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구나 하는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채 아들을 바라봤다. 연우가 긴장을 더할 때 엄마가 입을 열었다.
"꼭 그러고 싶냐?"
"예."
"알았다."
그렇게 연우의 부모는 아들의 새 출발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준식은 말썽쟁이 아이를 훈계하 듯 독설을 마다하지 않았다. 카페 주인이 될 거라는 연우의 말에 '네가 장사를 한다고!' 콧방귀 뀌며 망하는 건 시간문제라며 연신 찬물을 뿌렸다. 그럼에도 연우가 고집을 피우자 친구의 앞날을 예언하 듯 <절규>를 선물했다. 언젠가 강변에서 <절규> 속 인간이 될 거라 장담하면서.
"내가 준 선물 뜯어봤어?"
연우가 이사 온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준식이 휴대폰으로 말했다.
"응."
"자식 벌써 외로움 타나 보네!"
준식은 기다렸다는 듯 힐난과 안타까움이 섞인 반응을 보였으나 연우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침묵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외로움은 상대적이다. 준식이 생각하는 외로움은 무엇이고 연우가 느끼는 외로움은 무엇일까? 강변은 연우가 원하는 측면도 있었기에 그로 인해 찾아오는 삶의 파편들을 감내해야 한다. 강변에서 <절규>를 홀로 마주쳤다고 의기소침해질 필요는 없고 오히려 친구 녀석의 뒤끝 있는 장난기에 한 번쯤 폭소를 터뜨려야 하지 않을까.
<절규>를 도시생활에서 마주했다면 끝없는 절망의 감정이 북 받쳐 오를지 누가 알겠는가?
3.
연우가 강변을 선택한 순간 이전의 삶이 끊어졌다는 느낌은 피할 수 없었다. 서른을 넘은 연우에게 있어 서른 이전의 도시생활은 아득히 멀어진 과거가 되었고 일상의 연속성도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삶의 단절이었다. 숨 쉬는 공기가 달랐으며 북적이는 거리도 볼 수 없었다. 직장 상사로부터 감당하기 힘든 업무를 지시받거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생활로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다. 다만 이따금 걸려오는 준식의 전화가 연우에게 있어 지나간 삶과의 연결고리가 된 셈이다.
"생활은 어때?"
"힘들면 언제든 컴백해. 도시민으로서 환영할 테니."
"놀려 오라고. 아니 지금은 아냐. 연우 넌 한 번쯤 처절하게 절규해야 한다고."
세 차례 통화 동안에 휴대폰 속 준식은 온갖 감정을 버무리며 설득하고 농담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다행인 점은 카페로 놀려 오라는 연우의 빈말에 준식이 장난기를 발동한 채 가볍게 거절을 했다는 정도이다. 아직은 강변 카페로 지인을 불러들이고 싶지 않았다.
4.
지나가는 삶은 잡지 못한다. 지나가는 삶을 회피하 듯 강변의 삶이 연우 앞에 놓여 있다. 강변의 삶이 연우의 세계가 되었다. 활동 범위가 좁혀지긴 했지만 강변에도 색다른 세계는 존재했다. 카페도 하나의 세계이다. 하물며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 빛바랜 벽조차 하루 종일 마주 한다면 침묵하는 벽이라고 지칭하고 싶었다. 언젠가 침묵을 깨고 그 묵직한 입을 벌려 '그만 좀 쳐다봐!' 하고 쏘아붙일 줄 누가 알겠는가. 그런 날이 온다면 놀라 자빠질 일이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음을 카페를 걸고 말할 수 있다. 연우는 오늘 아침에도 침묵하는 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침대에서 일어나 몽롱한 정신으로 벽에서 시선을 거두고 주방으로 이동해 커피 한 잔을 내린다.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절규>를 마주하자 그림처럼 흉내 낸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일 수 있지만 <절규>의 누구처럼 비슷하게 몸짓을 따라 하면 축 처졌던 기분이 활력으로 팽창하는 느낌이었다. 맑은 정신으로 사물을 대할 수 있었고 본격적인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처럼 여겨졌다. 준식의 의도는 물 건너간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