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와 타투

등과 쇄골이 타투로 빼곡한 신부를 본 적이 있나요?

by Peace

있다면 저에게 소개해 주세요.


처음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었을 때 드는 생각은 이랬다. '생각보다 두껍구나.' 드레스는 하늘하늘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았으며 가을 자켓처럼 두껍고 촉감은 단단했다. 드레스는 혼자 힘으로는 입을 수 없는 인형 옷이다. 드레스를 입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속옷만을 남기고 전체 탈의를 해야 하며, 벌거벗은 채 속수무책으로 단상에 서 있으면 앞 뒤에서 전력을 다해 드레스를 입혀 주신다. 드레스 피팅의 하이라이트는 코르셋. 앞에 선 헬퍼가 전면의 매무새를 다듬어주는 사이, 등 뒤에서는 체형 보완을 위한 코르셋을 조여 보기 좋은 모양을 만든다. 다소 로봇같은 모양이기는 했어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와중에 스티커로 가려 얼룩덜룩한 타투의 흔적을 무시하려 애썼다.

'신부님, 가슴 위에 있는 건 필히 가리시는 게 좋겠어요. 팔 상박에 있는 것은 부케를 들거나 팔짱을 끼면 그리 잘 보이지 않지만 역시나 안 보이면 예쁘겠지요. 등에 크고 화려한 게 있네요. 이것 포함 3개는 가리시나요? 작은 것들은 베일이 가려줄 테니 괜찮을 것 같아요.'


타투를 해야겠어. 하고 처음 결심한 것은 가족이 입원해 있는 병원 대기실에서였다. 침통한 표정으로 의사를 기다리는 절박한 순간 내 머릿속에는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첫 소절이 자동재생됐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생사와 그 경계가 어찌나 우습게 느껴졌는지,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삶을 비웃으며 삶을 지켜내야만 했다. '오로지 나만을 등대 삼아 사는 데까지만 살겠다.' 그러니 내 타투는 의미로 꽉꽉 찬 신념의 표출이었다. 또한 허무주의의 강력한 발현이기도 했다. 내 몸도 머지않아 불타 사라질 것인데, 살아가는 고행의 시간 동안의 가장 큰 반항이 몸에 그림을 새기는 것이라면 얼마나 낭만적인 자기 사랑이자 자기 파괴의 방식인지. 그러기로 결심한 시절의 나에게 웨딩드레스따위는 입을 일이 없었다.


타투를 새긴 뒤로는 희한한 상황을 겪어왔는데, 나와 이성적으로 관계를 맺은 남자들은 내 타투에 대한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좋은데, 나라면 내 몸에 그림은 안 그릴 것 같아’, ‘나는 네 선택 멋지다고 생각해. 용기 있어.’ 같은 요청하지 않은 의견. 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난 칭찬일 테니 딴지를 걸기도 어색했다. 그러나 타투는 어느새 내 몸의 일부가 되어서,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 특히 위로를 듣는 상황은 몹시 어색했다.

타투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이랄 게 남아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 완벽하게 기분 좋은 반응을 얻기란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생김새에 대한 어떤 평가도 내린 적이 없는데 그들은 왜 내 몸에 말을 얹었는가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줄수는 있었겠다. ‘네 코가 납작해도 너는 꽤 귀여웠어.’ 혹은 ‘네가 근육 하나 없는 물몸이라도 네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마지막 타투를 새긴 뒤로 4년의 시간이 흘렀다. 비로소 내 타투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남자를 만나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내 타투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아닌 내가 되어 있었다.

아득한 미래 중 하나라고 여겼을 때는 대범하게 웃어넘겼지만 정말로 결혼식을 올린다고 생각하니 들킬 잘못이 있는 아이처럼 마음이 급해졌다. 웨딩 전용 타투 커버 메이크업으로 유명한 업체의 하반기 예약 오픈일을 캘린더에 메모하던 순간에 느낀 민망함이란 글로 옮겨 적기도 어렵다. 정말로 가리는 것이 최선인가 싶은 마음에, 타투를 드러낸 채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사진을 찾으려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결혼식 사진이란 정교하게 편집되는 작업물이라 흠 하나 없이 업로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흠. 나는 어느새 내 타투를 흠으로 보게 되었나?

첫 드레스 투어를 앞둔 전날 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상의를 벗어던지고 타투 커버 스티커를 붙인 일이다. 올 여름에 바다 수영을 즐겼더니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피부색이 조금 탄 것이 낭패였다. 핑크베이지 톤의 커버 스티커는 그새 탁해진 내 피부톤과 살짝 따로 놀았다. 그 덕에 집에서 파스 붙이듯 커버 스티커를 붙이는 스스로가 조금 더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아 기존 계획을 고수했다.

그 때의 기분이란, 피부 트러블 위에 듀오덤을 붙이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 트러블은 내가 적지 않은 금액을 현금으로 지불하고 만든 영구적인 트러블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분명 내 몸에서 특히 사랑하는 부분인데도 웨딩드레스라는 단어와 함께하면 내게서 덜어내야 할 결점으로 느껴지는 것이 이상하고 씁쓸했다. 나의 고민과 노력을 지켜보던 나의 예비 배우자는, '드러내고 입장하는 건 어때?' 하고는 이내 입을 다문다. 이 사안에 대해 남자친구가 내미는 위로는 어떻게든 허락으로 비춰질 수 있었고 그것은 우리 사이의 금기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남자에게 이해 받아 행복해졌다는 시시한 이야기는 아니다. 혼란한 시기를 비로소 지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결심을 하게 됐다는 납작함과도 거리가 있다. 한 때 나를 살게 한 결심, 내가 최선이라고 믿은 선택이 훈장보다는 흠결로 여겨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발을 들이기로 결정하며 느낀 씁쓸함에 가깝다.

나는 내 과거의 신념을 스티커로 가리고 싶은 것인가. 그것을 특수분장 스프레이로 꼼꼼히 가리고 싶은 것인가. 왜 예비 배우자의 가족이 내 몸에 대해 어찌 생각할지를 가장 두려워하게 된 것인가. 아니, 그들의 의견은 처음부터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건 내가 나를 어찌 여기는가 하는 문제와 더 가깝다.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우길 때는 언제고 왜 살아갈 날이 아득하다 여기기 시작했나. 내 신념이 희석되어왔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 부끄러워하고 있나.

내가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은 이성애자라는 사실이 내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지향한다는 사실과 양립하지 못하는 것 같아 내가 억지를 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말처럼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정말 자아에서 채도를 빼는 길인 것 같아 두려웠다. 조금 덜 두렵고 싶은 마음에, 결혼을 했으며 자아실현을 한 듯 보이는 여성을 레퍼런스 삼으려 애 쓴 적도 있다. 직업적으로 압도적인 성공을 거둔 여성의 말에는 공감하기가 어렵고, 전업주부로서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의견에도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답은 남의 입이 아닌 내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결혼은 어쩌면 아름답지 않고, 그 모든 허례허식과 자존심과 그것들을 조율하는 과정은 아름답지 않다. 딸의 인륜지대사를 앞두고 예민해진 가족과는 불편한 대화가 오간다. 당신의 딸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며 떵떵거릴 때는 언제고 나이를 조금 먹더니만 제 멋대로 짝을 찾아와서는 성화다. 그의 심경에 과하게 이입해 저녁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지만, 나이를 조금 먹어버린 딸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복잡한 마음에 어쩌면 울고 싶은 기분으로, 그러나 울지도 못한 채 다음 달에 있을 촬영 가봉을 위한 드레스를 고르는 일. 결혼식이란 이렇게 작위적이고 연극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결혼식의 본질이라면.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넘어 결혼식을 치르기로 결심한 사람에겐 그저 이 모든 낯선 절차를 따르는 일이 남았다. 다만 내가 웨딩드레스를 입을 때 타투를 가린다는 사실에 너무 깊게 골몰하지 않으면서.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이전과 달라졌음에 필요 이상으로 굴욕감과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면서.

타투를 가리고 드레스를 입을지라도 그게 내 결심을 지운 건 아니라는 사실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기억해야 한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인스타 스토리에 올릴 동영상을 조금 찍어준 뒤에 나의 예식에 대해 잊을 테니까. 어쩌면 밥이 어땠다, 주차가 어떻더라 정도는 기억할 수 있겠지.




이전 12화파도가 쓸고 간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