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8.

'당연하다, 합당하다, 마땅하다'

by 황정현

이.게. 뭔.가. 싶을 때


영 마음이 안 잡히는 하루다. 아침부터 당연하던 일상의 흐름이 깨져버렸다. 아빠의 전화 한 통으로.

엄마는 곧바로 아픈 아빠를 데리러 나가고 나는 정신없이 혼자 출근을 했다.


아침부터 비도 참 많이 내린다. 며칠 사이 이상하리만큼 서늘해졌다. 라디오에서는 매년 오늘, 자신의 생일에는 항상 화창하고 청명한 가을 날씨였는데 올해는 드물게 비가 내린다는 사연이 들려온다.


출근하자마자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복합적인 문제 상황을 전해 들었다. “어디서부터의 문제인가”, “누구의 문제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봐도 다 부질없는 짓같이 느껴진다. 얽히고설킨, 아니 해법은 너무나 단순해서 문제 같지 않은 문제들이지만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그것들이 마음을 괴롭힌다. 모두가 다 그 입장에서는 합당하다. 그런데 왜 그 합당함이 합쳐지면 이렇게 엉망인 건가.


맘을 다잡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안 받으려다 받은 모르는 번호는 유료 서비스를 교묘하게 강요하는 은행 광고 전화.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면 마땅히 내 자산 보호와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없으면 큰일이 나거나 죽진 않는다. 단순 명료하게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이렇게 우리는 마땅히 필요하지만 없어도 죽지는 않는 것들에 의해 하나 둘 포박당하는 중인 것 같다.


전화를 끊고 이유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은행 모바일뱅킹에 들어가 통장 잔액을 확인했다.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결제내역 하나. 어제 가게에서 6,300원어치 물건을 샀는데 15,800원이 결제가 되어있었다. 당연히 6,300원을 결제했을 거란 믿음에 영수증도 안 받았는데.


몽땅 다

이.게. 뭔.가.


스스로 당연하다고 합당하다고 마땅하다고 생각해오던 극 반대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과 상황들이 다반사다. 너무도 태연히 당연하고 합당하고 마땅하게 내가 생각하는 그 반대 지점에 굳건히 서있다. 내가 옳다고 기어나 우길 수 있지만, 그렇게 기어나 우겨 내가 맞게 된다 해서 과연 뭐가 그리 좋은가. 나는 내가 그렇게 정답률이 높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안다.


당연하다 :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하다.
합당하다 : 어떤 기준, 조건, 용도, 도리 따위에 꼭 알맞다.
마땅하다 : 행동이나 대상 따위가 일정한 조건에 어울리게 알맞다.


'당연하다, 합당하다, 마땅하다.' 일정한 기준과 조건, 주체가 존재하는 것들. 그런데 그것들은 주어진 처지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는 것이 문제다.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불가피한 처지가 있다(물론, 종종 불가피하지 않은 처지도 많다). 그래서 정답은 존재하지만, 결국 그게 정답은 아니다.


불가피한 혹은 불가피하지 않은 수많은 처지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뭘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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