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9.

최대한 또렷하게 눈을 뜰 것

by 황정현

헬렌 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중


어떻게 한 시간 동안이나 숲 속을 거닐면서도 눈에 띄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나는 앞을 볼 수 없기에 다만 촉감만으로 흥미로운 일들을 수백 가지나 찾아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오묘하게 균형을 이룬 나뭇잎의 생김새를 손끝으로 느끼고, 은빛 자작나무의 부드러운 껍질과 소나무의 거칠고 울퉁불퉁한 껍질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집니다. 봄이 오면 자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첫 신호인 어린 새순을 찾아 나뭇가지를 살며시 쓰다듬어봅니다. 꽃송이의 부드러운 결을 만지며 기뻐하고, 그 놀라운 나선형 구조를 발견합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이와 같이 내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중략)


내가 만약 대학 총장이라면 ‘눈을 사용하는 법’이란 강의를 필수 과정으로 개설했을 겁니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것들을 진정으로 볼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즐거울지를 알게 해주는 강의가 되겠지요. 말하자면, 나태하게 잠들어 있는 기능을 일깨우는 겁니다. (중략)


출근길 지하철 안, 눈앞으로 보이는 풍경에 하나의 사각 프레임이 그려진다.

사각 프레임 안의 상황, 표정, 자세, 선, 색, 모양, 위치, 속도, 타이밍 등 모든 요소들 안에 숨어있던 이유와 의미가 불쑥 존재를 드러낸다. 모든 것은 내가 모르는 이유와 의미로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널려있거나 대놓고 드러나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누릴 만큼의 수준이 안돼 여태 모르고 그냥 지나쳐왔나 보다. 사는 동안 내 주변 것들의 이유와 의미에 무감각한, 그것들을 인지하고 누릴 수준이 못 되는 내가 급 애처로워졌다.


나는 장님이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힌트 - 시각이란 선물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릴 수 있답니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람처럼 여러분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다른 감각기관에도 똑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내일 귀가 안 들리게 될 사람처럼 음악 소리와 새의 지저귐도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연주를 들어보십시오. 내일이면 촉각이 모두 마비될 사람처럼 그렇게 만지고 싶은 것들을 만지십시오. 내일이면 후각도 미각도 잃을 사람처럼 꽃 향기를 맡고, 맛있는 음식을 음미해보십시오.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자연이 제공한 여러 가지 접촉 방법을 통해 세상이 당신에게 주는 모든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영광을 돌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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