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기'보다는 '되기'에 집중해야 할 때
인사관리에 관심이 있으신 분, 특히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 중이시라면 미국 사설 인사관리협회인 SHRM(Society for Human Resource Management)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저는 전에는 그냥 에스.에이치.알.엠 이라고 읽었는데 여기 친구들은 셔(r)엄 이라고 발음하더라고요.) 저는 한국에 있을 때 PHR(인사 전문가 자격증, 한국에서는 전혀 쓸모없음)에 도전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SHRM이 그리 낯선 단체는 아니었습니다. 이 SHRM이 각 지역, 학교마다 Chapter(지부)를 두고 있는데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학부에 하나, 대학원에 하나, 지역에 하나 Chapter가 있더라고요.
암튼 나름 인사 전공자로서 저도 SHRM Chapter 의 멤버이고, 매주 1번씩 정기적으로 모여 자체적으로 강의도 하고 초청연사를 모시기도 하고 펀드레이징 등의 활동도 하곤 한답니다.
이번 주에는 'Resume and CV'라는 주제로 학교 취업상담실에서 한분이 오셔서 어떻게 하면 이력서를 배열해야 하는지 잘 쓰는지를 강의해 주었습니다. 타 학교 및 일부 단과 대학생, 대학원생들도 와서 강의를 들었고요.
저는 한국에 있을 때 인사 담당자로서 제가 거친 두 회사 모두 면접관을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면접관 교육을 기획해서 실시한 적도 있고, 제법 이름있는 모 전문대학교에서는 특강을 해 본 적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완전 야매도 아니란 뜻입니다^^;)
미국에서도 취업이 중요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본인을 매력적으로 어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상당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고민들을 하고 있었고요. 강의 중 기억나는 질문을 대략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지원하는 포지션과 상관없는 경력도 적어야 할까요?
GPA가 안 좋은데 쓰는 게 좋을까요? 안 쓰는 게 좋을까요?
최근 졸업학교를 먼저 써야 하나요? 아니면 연대기 순으로 써야 하나요?
대학원 생인데 고등학교도 쓸까요? 말까요?
제가 펜실베이니아 사는데 텍사스에 있는 회사를 지원하면 주소를 있는 그대로 쓰면 손해 보는 것이 있을까요?
제가 엑셀에서 Vlookup을 좀 할 줄 아는데 이런 것을 쓰면 강점이 될까요?
하지만 제가 불편했던 부분은 첫째, 이력서를 어떻게 쓰는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 없었고, 둘째, 너무 Selling에 초점을 두고 세션을 진행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력서 쓰는 팁을 얻으러 갔더니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면 짜증이 좀 나겠지만, 본질적인 접근을 전혀 다루지는 않고 팁만 나열하는 것도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기지입니다. 또한,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마치 자신을 상품화하여 Selling(판매)에 초점을 두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는 않다는 인상입니다.
저도 취준생으로 취업강의를 들어봤고, 현업에서 수많은 이력서를 검토했었으며, 또 소위 면접전문가라고 칭하는 분들이 어떻게 면접관들을 '속일 수 있는지' 가르치는 것들도 봤었고, 또 면접관들이 그 속임수들을 간파하려는 노력도 봐왔습니다. 물론 강사들이 '거짓말을 해라'라고 가르치지는 않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들이 무슨 수로 확인한단 말인가'를 암시하면서 팁을 주더라고요. 일단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먼저 저만의 결론을 제시하고 넘어가는 것이 훨씬 좋겠습니다.
[첫 직장 취업준비생의 경우]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면, 그리고 간절하다면, 양심에 비추어 거짓말은 하지 않되, 가급적 뻥튀기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치장할 것은 하고, 꾸밀 것은 꾸며라.
먼저 이런 조언을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어려운 취업시간을 거쳐왔고, 요즘 친구들은 더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하니, 가혹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나라가 아주 작은 사회이다 보니 워낙 경쟁적으로 자라왔고, 사실 도토리 키재기 수준의 차이 하에 취업의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 작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좀 꾸미고 싶다면 꾸미라는 게 제가 동생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입니다. 사실 학점이 2.9과 3.0의 역량이 얼마나 차이가 나겠습니까? 토익 890점과 910점 사이에 영어실력을 구분할만한 차이가 있을까요? 사회가 너무 경쟁적이다 보니 이 작은 1점이 당락을 결정하는 경우가 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거짓말만 아니라면 어느 정도 자신의 치장된 모습을 이력서에 담아내는 것은 용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입사원의 경우에는 이미 이루어 놓은 내용보다는 가능성을 좀 더 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본인의 인간적인 매력(동료와 잘 어울리고, 선배를 존중하고 등)을 어필하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경력자의 경우
자신을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정말 솔직하게 이력서를 쓰고 자신의 장점을 세세하게 써라. 그리고 길이에 구애받지 말고 쓸 수 있는 것은 다 쓰라.
경력자의 경우는 더 이상 도토리 키재기 수준의 경쟁은 없습니다. 이미 회사에서도 찾고 있는 인재상이 뚜렷하고 본인이 가진 경험들도 대학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혀져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꾸미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봅니다. 오히려 정말 자신과 맞는 회사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소위 수능시험 칠 때 대박을 기대하는 정도의 수준은 지났습니다. 본인이 일해온 시간들이 경쟁력이 되는 때입니다. 퇴사할 때 이유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회사가 너무 멀어서 그만둔 겁니까? 정말 연봉이 너무 적어서 그런 겁니까? 대부분의 퇴사 사유는 본질적으로 회사(그리고 그 안의 상사, 동료)와의 관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회사를 만날 때까지 일도 열심히 하여 목표했던대로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 이직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경험에도 경력자 채용 시 최종적으로 두 명이 경쟁할 때 그들의 능력이 너무 엇비슷해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던 경우보다 너무나 다른 장점을 각자 가지고 있어 그 지점에서의 갈등이 컸었습니다.
좀 더 본질적으로 돌아와서 '시작이 반'이라는 격언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숙했던 저도 동일하게 경험했지만 취업전선에 막상 뛰어들기 직전에서야 이력서를 쓰고 내가 관심 있는 기업에 매력 있는 지원자가 되기 위해 없는 것까지 끌어모으고, 창조적으로 이력서를 설계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일에 있어서 어떻게 '보이기' 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사실 대학 4학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은 시점에 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미 본인이 살아낸 4년이 있고 그 경험을 중심으로 이력서를 쓰기 때문에 거기에서 변동이 될만한 사실들은 영어점수를 조금 더 올리거나 자격증을 빠른 시일 내에 취득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사실 대학교 1학년 때(경력직의 경우 취업에 성공했을 때) 이미 그 시점부터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론 세상이 본인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 슬프긴 하지만, 목표한 바가 있다면 내가 영어를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영업을 잘 할 것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설득이나 관계에 능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사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대학교 1학년 때에는 성공적인 대학생활 강의, 대학교 4학년 때에는 취업 특강의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이를 전반적으로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이 대학 내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대학들이 학생들 취업에 관심이 많아 취업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지만,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학교, 교수님으로부터 정보를 얻기보다는 동아리, 혹은 선배에게서 정보를 많이 얻게 되는 듯합니다. 돈이 잘못된 곳에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박명수가 그랬다죠. 늦었다고 생각될 때에는 진짜 늦은 것이라고. 하지만 한 가지 위안이라면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갈 방향을 알아낸 것이기 때문에 늦긴 했지만 이미 절반은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이력서에 무엇을 채워야 할까 고민하시는 분들,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보일까' 보다는 '어떤 사람이 될까'에 좀 더 초점을 두면 어떨까 합니다.
정우성 같은 사람들은 뭘 대충 입고 나와도 빛이 납니다. 장점이 분명한 사람은 굳이 치장하거나 드러내지 않아도 빛이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약간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많은 분들이 흰 티에 청바지만 입어도 멋진(예쁜) 사람을 선호한다고, 본인은 외모 치장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 있습니다. 사실 그런 분들은 몸매 좋은 사람을 원하는 것입니다. 몸매가 좋은 사람은 청바지든, 흰 티 든 뭘 입어도 멋지거든요. 직장인들도 실력, 리더십, 직업윤리 등을 탄탄하게 갖춰 둔다면 이력서는 조금 허술해도 그 능력을 알아봐 주는 회사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영어에 대한 부분을 이력서에 작성한다고 합시다. [예시 1]이 뭔가 정돈되어 보이고, 길이도 있어 보이고 [예시 2]가 너무 짧고 투박하고 허술해 보이지만, 그 본질 자체가 가지는 힘은 [예시 1]이 [예시 2]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예시 1]
English Skill
TOEIC Score: 950
Reading and Writing skill: Advanced Level
Speaking and Listening skill: Intermediate Level
[예시 2]
영어 활용능력: 준 Native 수준. (비즈니스 영어에 전혀 문제없음)
마지막으로 이력서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찾아보진 못했는데 없을 것입니다...자신 없음) 결국 이력서에 팁을 주시는 분들도 이력서의 팁을 지원자가 낸 이력서에서 발견해 냅니다. '필요한 포인트에 굵은 글씨로 표시하니 더 돋보이네?', '필요 없는 부분보다는 핵심만 간결하게 쓰니 읽기가 더 수월하고 호감이 가네?', '학력을 시간순으로 나열할 때 가장 최근 것을 먼저 기재하니 이해가 한결 편하군', '포트폴리오 내라고 한 적은 없는데 이력서와 함께 보내니 더 확신이 드네?' 결국 이력서를 작성하시는 여러분들의 창의성이 또 다른 이력서 트렌드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모든 취준생, 직장인분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