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기적

사랑으로

by 진키

TV를 켜면 캐럴이 울려 퍼지고

구세군의 청량한 종소리가 이어진다.

9시 뉴스에서는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는

시민들의 인터뷰가 흘러나온다.

'올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이 돈이 어떻게 쓰였으면 좋겠는지'..

설렘이 묻어 있는 얼굴들,

개구진 웃음이 번진 표정들.

모두가 유난히 행복해 보인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걸까.

평소에는 쉽게 나누지 못했던

타인을 향한 나눔과 사랑은

도대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걸까.


어린 시절 이단 종교를 맹신하시던 할머니는

크리스마스를 끔찍이도 싫어하셨다.

그 모든 것이 예수쟁이들이 만들어낸 상술이라고 했다.

그 영향으로 우리 집에는 친구들 집에 걸려 있던 그 흔한

형형색색의 전구도, 예쁜 양말 한 짝도 걸리지 못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가 우리 집에 들를 거라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어차피 굴뚝 따위는 없는 집이니까.

설령 산타가 길을 잘못 들어 우리 집에 들른다 해도,

마귀 할머니 같은 우리 할머니가

단번에 내쫓아 버릴 거라는 생각에

나는 미리 체념해 버렸다.


내가 여섯 살이 되던 해부터

엄마는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나를 사우나에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25일 아침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사우나는 언제나 온갖 한방 냄새로 가득했다.

사우나인지, 한약방인지 구분이 어려울 만큼

진한 한방냄새에 코끝이 괴로웠고

축축하고 꿉꿉한 공기가 불편했다.

엄마를 따라 한증막에 들어갔다가

뜨거운 열기에 숨쉬기가 어려워지면

나는 곧장 뛰어나와 차가운 공기를 급히 들이마셨다.

거친숨을 몰아쉬며 뒤늦게 나마

한증막에 두고온 엄마가 떠올랐다.

꿉꿉하고 뜨거운 곳에서

엄마가 숨은 쉬고 있는지가 걱정이 되었던

나는 수시로 한 번씩

한증막에 들어가

엄마의 코끝에 검지손가락을 대고

엄마가 숨을 쉬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아직 안 죽었다” 하며

나의 검지손가락을 무안하게 했고

나는 민망함과 동시에 엄마가 숨 쉰다는 것에

큰 안도감을 느꼈다.


사우나에서 나온 그날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길목에 눈이 소복이 쌓여

걸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를 내며 발이 눈아래로

파고들어 키가 점점 작아졌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폴짝폴짝 발도장을 찍어대는 나를 데리고

엄마는 장난감 가게로 갔다.


“어제 사실 산타 할아버지가 부탁을 하셨어.

네가 집에 없어서 선물을 못 줬다면서

엄마 보고 네가 갖고 싶은 걸

대신 사주라고 하시더라.”


맨날 별일도 아닌 일에도 울어대던 나는

애초에 선물 따위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말 한마디로

내 안에서 산타에 대한 믿음이 다시 샘솟았다.

가끔은 산타가 굴뚝 없는 집도 방문한다는 것과

우리 엄마는 산타와 개인적인 연락이 가능한

세계 최고의 마당발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졌다.


그날 나는 쥬쥬 인형을 골랐다.

파란색 상의에 손목에는 분홍 털이 복실한 옷을 입은

마론인형이었다.

그날 하루만큼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행복했다.

다른 아이들이 누리던 크리스마스를

나도 더 이상 할머니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처음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내가 산타를 믿지 않는 나이가 될 때까지

매년 크리스마스이브마다

나를 사우나로 데려갔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마다 어김없이

산타대신 선물을 건네며

산타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올해는 네가 오빠와 너무 많이 싸워서

23일까지도 고민을 하셨다는 이야기'부터,

'내가 몰래 퍼먹고 냉동실에 숨겨 두었던

아이스크림 이야기'까지..

산타와 엄마는

내가 완벽하게 감췄다고 믿었던

모든 비밀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고,

나에게는 그 시절의 나를 닮은 딸이 있다.

무더위가 지나고 낙엽이 물드는 10월이 되면

나는 이른 트리를 꺼내고 쿠션커버를
빨간 체크 패턴으로 교체한다.

내 아이들에게는 조금 이르게 그 설렘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올해는 큰딸아이가 나에게 말한다.


“엄마, 선물은 산타가 주는 게 아니라

엄마가 주는 거래.”

“그래? 그럼 넌 못 받겠네.”


산타의 존재는 언제나 아이들의

큰 관심이고 미스터리다.

조금 더 일찍 어른이 되고 싶은 친구들은

그 비밀을 파헤치고 입에서 입으로 전달한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착한 일이

꽤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산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나는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어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새 포장지를 사고,

엄마라면 하지 않았을 법한 장식들로

아이들의 선물을 포장해 둔다.


얼마 전 아이의 산타 행사에서

유치원 산타가

엄마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한 아이의 엄마이기 전에,

산타의 소중한 아이였던 너에게.

아이를 키우며 성장해 온 시간들이

참 빛나 보여서 말이야.

행복한 인생을 응원하며,

너의 삶이 늘 따뜻한 크리스마스이길 바란다.

2025년 크리스마스, 학촌 산타 할아버지가



산타는 어쩌면

한 사람의 마음을 지나

다음 사람에게 건네지는

사랑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믿었던 산타는

이제 내 손을 거쳐

아이들에게로 이어진다.

선물을 고르는 시간,

들키지 않으려 숨죽이는 밤,

아이들은 언젠가

산타를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지겠지만,

그 사랑이 어디서 왔는지는

몸으로 먼저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산타의 ‘울지 말라’는 캐럴은

우리가 더 이상 울지 않았으면 하는

산타의 애정 어린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은 겨울마다

내 동심을 지켜주려 애썼던

엄마의 마음과도 닮아 있다.

어른이 되어도 울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처럼...


새해가 시작되면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다가오는 한 해 동안

울지 않아도 되는 하루들을

차곡차곡 쌓아,

다시 12월의 산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