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흔적
자다 깬 새벽,
목이 바짝 마름을 느끼고 거실로 나오면
전등이 꺼진 거실 한가운데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보지도 않는 티비 조명을 불빛삼아 엄마는
김치안주 하나두고 술상을 꾸렸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엄마의 소주는 비어지는 일이 없었다.
엄마의 소주 항아리 안에는
대나무 죽순이 들어있었는데
엄마는 대나무 죽순이 채 우러나기도 전에
항아리에 소주를 부어
글라스 가득히 소주를 따라서 마셨다.
어느 날 저녁 엄마의 거친 목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렸다.
매일 밤 소주를 마시는 엄마의 모습을
싫어했던 아빠는 엄마의 허락 없이 개수대에
죽순 소주를 부은것이다.
콸콸할 저항 없이 개수대에 쏟아진
엄마의 죽순은 메마른 나뭇가지 같은 모습을
한 채 힘없이 개수대위로 쏟아졌다.
오동통 처음의 생기 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뒤늦게 달려온 엄마는 아빠에게 거친 소리를 질렀다.
“이걸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왜!!!!
우리 아버지가 보내준 건데!!!!!
네가 뭔데 버려!!!!"
아빠와의 다툼과 트러블 속에서도
엄마는 단 한 번도 아빠에게
무례한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런 엄마가 아빠에게
‘니, 너’라는 표현들을 사용하여
아빠를 향해 악지르며
꺽꺽거리면서 목놓아 울고 있었다.
그 항아리 안에 들어있던 대나무죽순은
엄마의 고향인 완도에서
외할아버지가 올려 보낸 선물이었다.
박스 가득히 신문지에 하나하나 정성스레 쌓여 있던 죽순.
그 죽순이 처음 배송이 왔던 그날.
엄마는 그 죽순의 활용법에 대해서 오래도록 고민을 했다.
어떤 조리방법으로 그 죽순을 사용할지에 대해
장고했던 엄마는 그날 다판다에 가서
크고 길쭉한 유리 항아리를 사 왔다.
금색의 뚜껑을 가진 그 유리병은
많은 사람들이 담금주를 만들 때
흔히 쓰는 유리항아리였다.
엄마는 대나무 죽순을 깨끗이 씻고 소독하여
아이 팔뚝만 한 사이즈로
댕강댕강 썰어 항아리 가득히 소주를 부었다.
엄마의 대나무 죽순은 푸르른 계절을 지나
황톳빛의 겨울이 되어가듯 색이 바래져 갔다.
엄마는 그 소주를 마시고 또 마시고
그리고 채우고 또 채우기를 반복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가족을 떠나보냈고,
나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지나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 되었다.
심폐소생을 하듯 새로운 소주를
산소 빨아들이듯 적셨던 대나무 죽순은
10년의 시간을 지나
이제 처음의 색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엄마의 마르지 않은 소주라고 생각했던
죽순소주는 엄마에게 있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주고 가신 하나의 산소 호흡기였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
지혜가 필요할 때, 몸이 아플 때, 외로울 때,
그 모든 순간에 죽순소주를 통해서 위로받고 있었다.
나뭇가지로 말라 버린 그 죽순,
더 이상 죽순의 향조차 느껴지지 않았지만
엄마에게 있어 그 의미는 남달랐다.
그날 엄마는 오래도록 엄마의 아버지를 부르며 울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사과할 타이밍을 찾지 못하고
쭈볏쭈볏 자리를 피했다.
내심 아빠의 소주배출에 통쾌함을 느꼈던 나도
엄마를 위로할 자격은 없었다.
엄마는 손바닥으로 죽순을 집어 들어
다시 병 속에 주워 담았지만
이미 음식물쓰레기들과 뒤섞여
여러 오물들이 묻어버린 이후였다.
생명력을 잃고 앙상한 가지의 모습을 한 죽순은
다시 병 속에 담아지지 못했다.
그 뒤로 엄마는 글라스에 소주를 마시지 않았다.
내심 핑계일 뿐이라고 엄마는 소주가 마시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작은 의심은 더 큰 죄책감이 되어 돌아왔다.
엄마는 단지 소주를 마시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건강했던 할아버지가 시집간 딸에게
보내온 여러 농작물 가운데
엄마는 죽순으로 소주를 담갔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그 죽순 소주를 통해서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추억했던 것이다.
가끔은 나도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버린 내 부모,
이제 그때의 할아버지 나이가 되어가는 내부모를
나는 무엇으로 추억할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 초라한 내 목에 감겨있는
금목걸이를 만지작 거려본다.
장신구하나 없이 시집간 딸내미의 모습이
속상해서 돈이 모여질 때마다
금은방에 데려가서 엄마가 주는 예물이라며
하나둘 끼워주는 엄마모습이 생각난다.
됐다고 필요 없다고 얼음덩어리처럼
굴다가도 손가락에 끼워진 금가락지에
흠집이 날 때마다
엄마의 사랑이 깎여 나가는 거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나에게 흔적을 하나둘 남기는 엄마에게
문득 고마움을 느낀다.
나의 모든 것이 엄마의 흔적임에도
나는 매 순간 엄마를 잊고 산다.
그러다 목에 걸린 금목걸이를 만지거나
손가락의 작은 흠집을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전화를 건다.
“아이고 사모님, 식사는 하셨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