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틀렸고 지금은 맞았다.
끝을 무탈하게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늘 동경해 왔다.
그러나 내게 있어 끝은
언제나 상처와 억눌린 기억으로 남았다.
직접 연애를 하지 않아도,
친구들의 이별은 내게 고스란히 각인되었다.
살점을 떼어낸 듯 이별 후 울부짖는 친구,
다시는 사랑 따위 하지 않겠다며 남자를 증오하던 친구 등
그들의 아픔이 곧 내 상처가 되었고, 나는 다짐했다.
연애하지 않겠다고 혹여 하더라도,
절대 나쁜 끝을 남기지 않겠다고...
그 뒤로 누군가 내게 호감을 표시하면
나는 카톡을 읽고도 답장을 하지 않는다거나,
'내가 왜 너를 만나?'라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무례한 언행을 일삼았다.
상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작하지도 않은 사랑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그를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연락을 이어온 사람 S.
내 철벽 같은 태도에도 그는 한결같았다.
생일이면 작은 선물을 보내주고,
명절이면 안부를 물었다.
무심하고 까칠한 나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연락해 주는 그에게 마음이 끌렸다.
친구들은 그를 두고 순애보라 불렀다.
조금씩 내 마음이 그를 향해
서서히 열릴 때쯤 그는 입대했다.
군대에서도 그는 이따금 전화를 걸어왔다.
콜렉트콜을 통해 거는 전화는
짧은 시간 안에 발신인을 확인하고
수신자 통화료 부담으로
통화를 이어가는 형식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행여 내가 전화를
그냥 끊을까 싶어 다급하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그리고 짧은 통화에도 특별할 것 없는
나의 안부를 물어주었다.
그렇게 2년.
이젠 그의 전화를 내 쪽에서
먼저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가 제대 후 휴대폰을 새로 샀을 때
나는 아이폰 유저로서 폰 사용법을 알려주겠다며
처음으로 그에게 먼저 밥을 먹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가까워졌다.
처음 우리가 연인이 되기로 한 그날 밤,
전화통화 속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높았다.
한참을 통화하는데 수화기 너머로
“아차!” 하고 탄성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네 번째 정거장을
그냥 지나쳤어. 막차 놓치겠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목소리 끝이 들뜬 웃음으로 번졌다.
“차 놓치면 어쩌려고 그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뭐, 그깟 차 놓치면 어때. 이렇게 좋은데”
그의 말에 나는 전화를 귀에 댄 채
홀로 웃음을 터뜨렸다.
내 뺨까지 열이 차올라 전화기 표면에 김이 서렸다.
나를 이렇게 까지 좋아해 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는 전형적인 공대생으로 새벽까지
도서관에 남아 공부하던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이 좋았다.
캠퍼스를 거닐며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마치 나도 그 학교 학생이 된 것 같았다.
함께 도서관에서 각자의 책상에 커피와 박카스를,
짧은 메모와 함께 남겨두던 데이트는
내 친구들이 고등학교 때 이미 끝냈던 장면들이었다.
나는 대학에서야 뒤늦게
그와 모든 걸 처음으로 누렸다.
우리는 비를 좋아했다.
우산을 두고도 함께 비를 맞으며
보이는 물웅덩이마다 체중을 실어 있는 힘껏 밟았다.
운동화와 옷이 다 젖어 들어가도 그저 즐거웠다.
산행로에서 작은 계곡을 발견하면
갈아입을 옷이 없어도 뛰어들어
옷을 그대로 입은 채로 수영을 하며 놀았다.
그러고 젖은 옷을 입은 채 한참을 걸어
집에 오면 옷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바싹 말라 있었다.
그렇게 철없지만 순수하게 우리는 그 순간을 사랑했다.
연애 3년 차 우리는 둘 다 나란히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는 대전으로 나는 서울로 대학원이 결정되며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주말마다 만나고 싶었지만 외아들이었던
그는 가족과의 시간을 이유로
약속을 미루는 일이 잦았다.
떨어져 있는 시간만큼 점점
그가 변해가는 것을 느껴가고 있었다.
그의 엄마와 우리 아빠의 생일이 같아서
매년 아빠의 생일케이크를 살 때마다
그의 어머니 케이크까지 두 개를 사서
그의 손에 하나를 들려 보냈다.
맛있게 잘 먹었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네가 나한테 잘 대해주는 이유가
다 내가 잘 나서래"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유머인 듯
얘기하는 그의 말이 나는 전혀 유쾌하게 들리지 않았다.
끝이 두려웠던 내가 연애를 하는 방식은
모든 것을 내어주는 연애였다.
상대방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고 배려하면
그 사랑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재밌지 않은 그의 말도 안 되는 그런 유머에도
기분이 상했다고 말을 하지도 못했다.
"내 친구들이 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래"
"그래? 근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결국 밑동만 남자나
나는 그렇게 밑동만 남는 나무는 안 하고 싶어“
처음 우리 집에 그가 놀러 왔던 날
그는 유난히도 꼼꼼하게 우리 집을 둘러보았다.
당시의 우리 집은 크고 넓은 40평대의 고층 아파트였고
바로크양식에 고전적인 패브릭시트를 덮고 있는
고급소파가 크게 놓여있었다.
짙은 원목장식장 안에는 금식기와 고급양주들이
가득 차 있었다.
우리 집을 둘러보고 나오자 그가 얘기했다.
"너네 집이 가난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우리 엄마가 가난한 여자는 만나지 말랬거든."
나는 억지로 웃는 얼굴을 유지했지만,
얼굴의 모든 근육이 경직되고 있음을 느꼈다.
우리 집 그 정도로 잘살지 않아'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예고 예대를 나왔으니 당연히
부잣집 딸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넓은 집에 고급가구에 가전이니
충분히 오해할 수 있었겠다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그 시기는 우리 엄마의 사업이
어려워지고 있을 시기였고
곧 좁은 집으로의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의 얘기에 나는 우리 집이
어려워졌다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은 곧 '이제 나는 가난한 집 딸이야'라고
인정하는 꼴이고 그럼 그가 나를 떠날까 두려웠다.
취업을 앞둔 그에게 징크스가 하나 있다면
나와의 동행이 그에겐 행운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열심히 자소서를 써주며 그를 응원했고,
그에게 ‘행운’ 같은 존재라는 생각에
스스로 나의 쓸모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의 취업준비와 나의 대학원논문까지 겹쳐지며
우리는 점점 바빠졌고 서로 점점 멀어졌다.
적지 않은 나이..
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했다.
내가 꿈꿨던 미래에 현재의 그의 모습은 없었다.
그때부터 긴 연애기간.
그에 반을 나는 이별을 준비하며 보냈다.
그의 안부를 먼저 묻지 않았고
기념일과 특별한 날에 혼자 보내는 방법에 적응했다.
그와의 추억에도 대화에도 더 이상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날엔 마음을 비우려
혼자 등산을 했다.
그 노력 덕분인가 어느샌가부터
그의 연락을 기다리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변해가는 그를 보며 나 홀로 준비했던 짧지 않은 이별준비.
그리고 디데이날..
나는 손바닥에 땀이 배어드는 걸 느끼며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나고,
그가 받자마자 나는 숨을 고르지 못한 채 말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그동안… 고마웠어.”
반대편에서 정적이 흘렀다.
깊은 한숨 소리만 스피커를 타고 퍼졌다.
하지만 그는 나를 잡지 않았다.
“그래… 그러자…. 미안했어 많이”
7년간의 사랑은 20여 분만에 끝이 났다.
내가 헤어졌다고 할 때 주변 친구들은 미쳤다고 했다.
"야 걔 이제 취업까지 했다며 이제 돈도 많이 벌고 승승장구할 텐데 너네 결혼만 하면 되는데
누구 좋으라고 헤어져. 미친 거 아니야?
너 그동안 걔 자소서며 뭐며 다해줬잖아 “
그 생각을 나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의 관계는 이제야 안정을
찾아갈 타이밍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성취는 그의 것이고
그의 노력과 운명이 내 삶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내 사랑의 시간과 열정을
그런 식으로 보상받고 싶지 않았다.
그는 충분히 노력했고 나 역시 최선을 다했다.
서로 서툴고 무디고 보수적이었던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상대에게 맞춰 왔다.
어쩌면 그도 많이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됐다, 퉁치자.
너도 나도 그 정도면 서로에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20대에 그런 사랑을 해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나는 서서히 그를 잊었다.
모두가 내 선택을 틀렸다고 했고
나 또한 확신할 수 없었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배려심 깊은 사람과 운명처럼 빠른 결혼이 결정되고
내 웨딩사진을 sns에 올렸던 그날 밤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였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전화번호..
무슨 이유인지 전화 한 용건이 궁금해서
전화벨이 끊어지기도 전에 덥석 통화버튼을 눌렀다.
"잘 지냈어?"
"응. 잘 지냈어"
길게 뜸을 들이더니 그가 말했다.
"진짜 미친 소린 거 아는데 우리 다시 만나면 안 돼? “
"응 안 돼. 나 곧 결혼해 “
"봤어. 그래도 아직 결혼을 한 건 아니잖아.
마음을 돌릴 수는 없는 거야?
우리 엄마도 너한테 미안하대"
"그때 잡지 그랬어? 내가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너도 내심 속 시원했잖아.
네가 나쁜 사람 되고 싶지 않아서 미뤘던 말이자나.
나는 네가 못하고 미뤘던 그 말을 대신 꺼내준 거뿐이야."
그는 수화기 너머로 목놓아 울었다.
미안하다고 제발 한 번만 다시 기회를 달라고 울었다.
"내 20대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잘 지내 “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끊어진 통화음이 방 안을 메웠다.
휴대폰 배경화면 속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이 잠시 낯설게 보였다.
만약 내가 처음 헤어지자고 말했던 그때
그가 나를 잡았다면 우린 달라졌을까?
이별을 준비했던 내가 모든 걸 없던 일로 할 수 있었을까?
함께했던 20대의 시간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장기간의 연애,
보수적인 여자친구 그도 답답했을 거다.
헌신적으로 도와준 여자친구를
결혼적령기의 나이가 되었다는 이유로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를 이해 못 했던 건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그에게 이별을 고할 때
그가 나를 잡아주길 바랐다.
내이별의 준비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고
그가 확인시켜 주기 바랐다.
하지만 그때 그는 나를 잡지 않았다.
내가 놓아버린 손에
그가 나름의 죄책감과 후련함을
동시에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과거에 행복했던 추억들은 눈물이 되어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끝을
마침내 내 손으로 다시 한번 맺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알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버려진 게 아니었다.
그가 나무를 찾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그에게 그늘을 주고 싶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안다.
그 이별이야말로 내 삶에서 가장 옳았던 선택이었다.
끝은 두려움이 아니라 나를 지켜낸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