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
지하철 옆자리 남자의 패딩에서 삼겹살 냄새가 났다.
지독한 배고픔에 굶주렸던 나는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의 몸에 밴 삼겹살 냄새를 삼켰다.
그리고 꿈속에서 나는
마음껏 상추쌈을 싸 먹으며 행복했다.
눈을 떴을 때 내 옆 남자의 패딩이 흥건하게
내침으로 젖어있었다.
죄송하다며 다급하게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어 그의 옷을 문질러 닦았다.
괜찮다고 두 손을 휘휘 젓는 남자를 뒤로하고
다음 정거장에서 급히 뛰어내리면서
그에게 세탁비라도 쥐어 줬어야 했나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연습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은
늘 먼지를 감싸고 있었다.
바닥에 앉아 스트레칭을 하면
댄스 플로어에서 올라오는 고무 냄새가
코끝을 찔렀는데 그 냄새가 내 땀 냄새와 섞여
구분이 안 될 만큼 짙었다.
혹시나 이러한 불쾌한 냄새를
타인도 느낄까 싶어
젖은 레오타드를 여러 번 갈아입었다.
밤이 깊어 연습이 끝나면,
허벅지 근육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고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서는 앉을 힘도 남지 않았다.
아침저녁마다 체중계를 올려다보며
숫자 하나가 오르내릴 때마다 숨을 죽였다.
뒤늦은 무용 전공, 복수 전공. 나는 엄마에게,
세상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증명해야 했다.
음식을 배불리 먹던 날 목구멍에 손을 넣고
먹은 것들을 게워냈다.
토악질 소리가 변기 물소리보다 커서
세면대 수전을 틀어놓고 그 위에 숨겼다.
여러 번 꿀렁꿀렁 배가 움직이고 나면
이내 먹은 음식들이 변기로 쏟아져 나왔다.
"하.. 참 많이도 쳐먹었네..“
죄책감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식욕을 이기지 못한 날이면 어김없이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걸 게워냈다.
어떻게 해야 먹은 것들을
잘 게워낼 수 있는지에 대한 미친 꿀 팁까지 생겼다.
발끝은 늘 갈라져 있었고,
무릎에는 테이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겨드랑이 밑으로 땀이 흘러내리면,
소금기가 하얗게 굳은 살결이 따끔거렸다.
피로가 쌓인 종아리를 문지르다 보면
피부 밑에서 작은 모래알들이
굴러다니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밤마다 레슨이 끝난 뒤에도
나는 거울 앞을 떠나지 못했다.
형광등 불빛 아래, 내 몸은 어디 하나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얼굴의 골격은 너무 도드라져 보였고
허벅지는 여전히 굵었다.
몸을 옆으로 돌려보며 배를 집어넣었지만
숨을 내쉬는 순간 다시 현실이 드러났다.
그때마다 머릿속에 떠올랐다.
칼로 이 몸의 군살을 도려내어
정육점 냉장고에 고기처럼 걸어둘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다시는 배고픔에도,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텐데...
다이어트에 좋다는 약이라면 무엇이든 삼켰다.
쓴 한약의 냄새가 식도에 오래 남았고,
양약은 입을 바싹 말렸다.
허벅지에는 주사 자국이 점점 늘어갔고
피부 아래에 퍼지는
푸른 멍이 손바닥만큼 번졌다.
손가락으로 눌러보면 뜨거웠지만
그 통증은 묘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살이 빠지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아마도 그 무렵의 나는 몸이 아니라,
‘유지되는 숫자’를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결혼 전에 사주를 봤다.
"불이 많아도 너무 많아요.
자궁까지 타들어가고 있네요.
아이를 갖기 힘들 거예요.
혹여 가져도 순산은 어렵습니다."
그 사주를 듣고 화가 나면서도
두려움에 휩싸였다.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놓고는
막상 두려운 얘기를 들으니 감정은 추스릴 수 없었다.
결혼 후 첫 아이가 생겼을 때
나는 두 번째 두려움에 휩싸였다.
아이를 가져도 건강하게 순산할 수 없다는
역술가의 말이 떠올랐다.
운명의 장난인지 아기를 임신한 후에
출혈이 자주 있었다.
‘엄마가 잘 먹어야 아이가 건강하다’는
어른들의 말에 나는 처음으로 마음껏 먹었다.
게워내지 않아도 됐다.
다이어트라는 감옥에서 잠시나마 해방된듯했지만
여전히 불어버린 몸을 마주할 용기는 없었다.
형광등아래 거울 속에 적나라하게 비치는
내 모습이 싫어서 향초를 켜고 샤워를 했고,
산모수첩에 체중을 적는 일도
2-3킬로씩 속여서 적었다.
그렇게 아이를 순산했다.
아이를 건강하게 낳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나에게는 큰 숙제가 남았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출산하고 나면 다 빠진다는 말은 대학 가면
살 빠진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거짓이었다.
나는 그제야 변해버린 내 몸을 마주했다.
아이의 돌잔치를 몇 개월 앞두고
돌잔치에서 사람들을 마주해야 할
두려움이 크게 일었다.
다시 미친 듯한 다이어트를 시작하며
체중을 감량한 상태로 무사히 돌잔치를 끝냈다.
'그래 직업무용수도 아니니
이 정도면 되었다'라고
'이제 더 이상의 출산도 다이어트도 없다'며
평온해졌던 나는 몸에 피로감을 느꼈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에 휩싸여 화장실에서
확인해 본 결과 두 줄... 또.... 임신이었다.
둘째를 낳고 난 뒤,
예전처럼 마음만 먹으면 금세 빠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첫째 때 했던 그 무모한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름만 들어도 눈이 아릴 만큼
수많은 약과 주사를 시도했지만
내 몸은 이미 내성이 생겨
어떠한 약물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영원히 젊고 탄탄할 줄 알았던 내 몸은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건강검진에선 이제 내 간이 재구실을 못한다며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선천적으로 약한 간에,
무리가 가는 줄 알면서 먹었던
약들의 영향 탓이었을까...
하루살이처럼 연명하던 다이어트의 시간은 이제,
하루하루 살아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무렵, 아이가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작은 손을 잡고 무용실 문을 다시 열었을 때,
그곳은 예전의 냄새 그대로였지만
내 마음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거울 속에는 꿈을 향해 달리던 소녀 대신,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엄마가 서 있었다.
무대 위에서 완벽을 좇던 나는 사라지고
이제는 생명을 품고 살아남은 몸으로 서 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낯설고
여전히 부정하고 싶지만
알 수 없는 책임으로 그렇게 버티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운동을 열심히 해봐야지 싶다가도
어느새 손가락은 휴대폰 화면 위를 게으르게 튕기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나 같은 사람에게
또 다른 다이어트의 희망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요즘 핫하다는 마운자로 주사를 한 달 맞고
다시 의사를 만났을 때, 의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약이 안 듣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실제로는 처음 봅니다.”
순간 어이없는 웃음이 났다.
이 특별함에 감사해야 할까.
내 몸의 변화를 적응해 가며,
나는 여전히 철없는 꿈을 꾼다.
어쩌면 진짜 몸의 불필요한 지방을 떼어낼 수 있는 지방정육점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그때는 꼭, 회원권이라도 끊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