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살아남은 기록
아파트 난간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던 때가 있었다.
그땐 그것만이 갈등의 해결방법이라고 믿었다.
딱 한번 뛰어내릴 용기가 있었다면
나에겐 지금의 시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한 번의 용기를 내지 못한 덕에
나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첫째 아이의 어린이집 입소 확정연락 후
그날 밤 뉴스에서는 코로나의 확산으로 인해
모든 보육기관 등원을 잠정 보류시켰다.
조금만 더 버티면 아이가 어린이집에
입소 할꺼라는 기대는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기한 없는 가정보육이 이어졌다.
긴 가정보육이 끝나고
아이가 처음 어린이집에 들어갔던 날,
나는 둘째를 품에 안고 오래도록 안아주었다.
늘 질투 많은 첫째 곁에서 수유 시간에만
겨우 안아주던 둘째였다.
이제야 비로소,
첫째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둘째와
나만의 숨통 같은 시간이 열렸다.
입소 후 일주일, 전화한통이 울렸다.
"수아 어머님, 다름이 아니고
수아가 재원이를 물었어요.
재원이 어머님이 화가 많이 나셔서
직접 통화를 한번 해보셔야 할 거 같아요.“
넘겨받은 전화번호를 화면에 띄우고
통화버튼을 누르기 까지 멍하니 폰만 들여다보았다.
폰이 고장 나길...
버튼을 눌러도 연결이 되지 않길..
제발 그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길..
어렵게 통화버튼을 누르자
격양된 아이엄마의 목소리를 들렸다.
“도대체 왜 무는 거에요?
아니 우리 애 팔에서
그 집 애 이빨 갯 수를 새봤다니까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가정에서 더 신경쓰겠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를 채
끝마치기도 전에 목이매여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문장을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울어버리고 말았다.
울음 섞인 내 사과에 상대아이엄마는
이내 누그러들며 앞으로 조심해달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수아야, 너가 재원이 물었어?"
"응. 내가 앙 물어떠!!"
해맑게 웃으며 뒷짐지고 서서
친구를 물었던 행동이 자랑스러운냥
아이는 통통한 자신의 팔뚝을 접어
입에 가져다대며 무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그저 해맑은 아이에게 뭐라 설명을 해야할까...
그 순수한 웃음 앞에서,
나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수없이 역할놀이를 반복해 보았다.
아이의 행동을 조금씩 교정하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이는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반친구들을 물었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나는 선물과 약,
손편지를 챙겨 상대 부모에게 보내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어야 했다.
낮에는 아이를 꾸짖고,
밤이면 미안함에 잠든 아이의 몸을 끌어안은 채
얼굴을 파묻고 목 놓아 울었다.
아이들이 깰까봐 큰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너무 힘든 나머지 신랑에게 힘들다고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차가웠다.
"다들 그렇게 키워,
우리 사촌 누나는 아들 셋을 그렇게 키웠어“
수아가 두 번째로 재원이를 물었던 그날,
나는 어린이집으로 불려갔다.
상대엄마는 cctv열람을 요청했고,
원장의 동의 앞에서 아이가 친구를 물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 우리는 그때의 아이들을 마주했다.
영상 속에선 재원이라는 친구가
수아의 물건을 강압적으로 뺏는 장면이 나왔고
그 후 수아의 고성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이어졌다.
수아는 자신보다 한 뼘이나 더 큰 친구에게
힘으로 제압이 되지 않자
결국 장난감을 쥔 친구의 손으로
얼굴을 가져대더니 꽉 물고 말았다.
그리고 담임은 뒤늦게 뛰어와
물었던 수아를 혼내고 있었다.
나름 빼앗기지 않으려던
처절한 아이의 표정이 나를 아프게 했다.
동생에게서 사랑을 빼앗긴 아이가,
장난감만이라도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의지처럼 느껴졌다.
영상을 보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적어도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친구를 물지는 않았으니까...
그 모습을 상대엄마도 봤을테니까..
그러나 그녀는 끝내 “무는 행동은 잘못”이라며
담임의 지도를 부탁하는 말로 결론을 맺었다.
재원이를 세 번째 물었던 그날은,
원장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재원이 어머님이 더 이상은
힘들다고 하십니다.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어머님 생각은 어떠세요?“
더 이상 수아의 등원이 어렵다는 뉘앙스의 대화였다.
원장이 어떤 답변을 기대하고
나에게 말했는지 의도를 간파했지만
나는 "그럼 저희가 원을 옮길께요" 라는
원하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주변에 갈 곳은 없고
어린이집을 그만두게 된다면 다시 가정보육이 시작된다.
'원을 그만두고 가정보육을 할 것이냐'와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가르치며 이해를 구하느냐' 사이에서
나는 어떠한 선택도 내릴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 야경증인 둘째아이로 인해
잠도 자지 못해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존재라고 느꼈다.
받아주지 않는 세상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만이 남은 답인 양 보였다.
세상이 나와 내 아이를 구석으로 몰았던 그때,
우린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19층에서 불꺼진 아파트 단지를 내려다보며
고요함을 느꼈고,
세상 모든 불행과 갈등은
온전히 나에게만 있다고 느꼈다.
그날은 비가 유난히도 많이 왔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빗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반짝반짝 빛이 되어 쏟아져
바다에 비치는 윤슬처럼 느껴졌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대로 뛰어내리면
새로운 세상으로 떨어져
지금의 모든 갈등들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를 먼저 던지고 내가 뛰어내려야 하나.
둘째는 아기띠를 한 상태로 뛰어 내려야 하지 않을까?
떨어지는 도중에 손을 놓칠 수도 있자나.
어짜피 갈거면 다 같이 가는 게 맞지 않나?'
장고 끝에 첫째아이를 들어올리려는데
둘째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내 행동의 무게를
깨닫고 바닥에 무너져 앉았다.
퇴근한 남편은 어린이집에서의
통화 내용을 전해 듣고,
결국 어린이상담센터를 예약했다.
더는 버틸 힘도, 다른 선택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예약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그리고 마지막 희망을 붙잡으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무거운 결정을 받아들이며
아이를 데리고 상담센터로 향했다.
테스트 결과...아이는... 정상이었다.
오히려 보육교사의 경력을 물으며
상황 시 대처가 미흡했던 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시며 보육교사와
아이와의 관계개선을 위한 솔루션을 제공해줬다.
그리고 그 다음 조심스럽게 건넨 말은....
'엄마가 치료가 필요합니다'....였다...
수치화된 나의 테스트결과를 받아든 남편은
집에 가는 차안에서 말이 없었다.
차안은 차창유리를 세차게 두드리는 빗소리만 가득했다.
빗물과 신랑눈물이 빛에 반사되어 계속 반짝였다.
앞 유리 와이퍼가 빗물을 쓸어내릴 때 마다
빛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남편의 눈에 고인 빛은 턱 끝에서 잠시 머물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뚝뚝 떨어졌다.
꼴깍꼴깍 눈물과 침을 조용히 삼키던
남편은 힘들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너하고 싶은 거 다하자..
치료가 필요하면 받고 어린이집 옮길 수 있으면 옮기자.
내가 육아휴직이라도 낼게. 뭐든 할게.
몰라줘서 미안해. 무심해서 미안해"
결혼 후 처음본 남편의 모습이었다.
"아니..나는 애만 괜찮으면 돼,
내 잘못 아니라니까 그냥 그걸로 됐어."
아이의 모든 행동문제가 엄마의 책임이라고,,,
TV프로그램을 보면 가정에 문제가 있었더라고
애 좀 더 안아주고, 애 좀 사랑해주라고
그게 엄마의 역할아니냐고 했던 상대 엄마...
'저도 많이 안아주고 저도 많이 사랑해줘요'라고
대응하지 못하고 그저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밖에 하지 못했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제 문제가 아니래요'라고 다시 전화라도 걸어서
당당하게 변명하고 싶었다.
내가 하지 않은 일로 사과를 해야 하는 것,
그건 자식을 둔 부모로서 해야 하는 첫 번째 책임이었다.
유난히 누군가에게 불편함이나 해를
끼치지 살고 싶지 않았던 나로선
그 과정과 모든 시간들이 부모로서
막중한 책임이 따랐던 견디기 힘든 갈등의 시작이었다.
거짓말처럼, 솔루션 이후
아이는 더 이상 친구를 물지 않았다.
처음엔 효과 없을 거라던 담임도,
이후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긴 터널을 지나며 우리는 더 단단해졌다.
베란다에 서 있던 그날,
끝내 내지 못했던 한 번의 용기가 지금의 삶을 지켜냈다.
수많은 갈등 속에서도 언젠가는 빛이 스며든다.
때때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나는 그날 바라보던 빗방울의 윤슬을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의 삶이 다시 주어진 빛임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