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식탁, 그리고 나의 식탁
어렸을 때부터, 그리고 내가 다 커버린 지금까지도 엄마는 참 적게 먹는 사람이다.
엄마는 늘 날씬을 넘어 말랐고, 밥도 한 공기 채우는 법이 없었다. 절반 정도 담아온 뒤, 몇 숟가락 먹고는 늘 배가 부르다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몸도 약했다. 감기, 인후염, 구내염을 번갈아 달고 살았다.
머리가 조금 크고 나서부터 나는 그런 엄마가 걱정됐다. 식탁에서 엄마가 너무 적게 담아오면, 성급하게 재촉하곤 했다.
“엄마, 밥을 잘 먹어야 건강해지지.”
어린 목소리로, 하지만 진심으로 꾹꾹 채근하던 나.
엄마는 늘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는 이만큼이면 충분해.”
하지만 엄마의 ‘이만큼’은 내 기준으로는 반 공기에도 턱없이 못 미쳤다.
나는 속상했고, 또 걱정스러웠다. 적게 먹고, 자꾸 아픈 엄마가.
엄마에게는 대신 한 가지 확실하게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커피였다.
집에는 제법 멋진 에스프레소 머신이 놓여 있었고, 엄마는 커피를 내릴 때면 이상할 만큼 우아했다. 그날 기분에 맞춰 고른 찻잔에 갈색 커피를 천천히 붓고, 피어오르는 연기를 가만히 바라보는 엄마의 뒷모습.
그 옆에서 나는 또 잔소리를 했다.
“엄마, 커피 말고 밥을 잘 먹어야지.”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지겨웠을까 싶다.
그런데도 엄마는 늘 화내지 않고,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이 얼마나 넓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는지, 나는 내 아이가 생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서른이 넘은 지금.
나는 놀라울 만큼, 그때 보았던 엄마를 닮아 있다.
편식은 심했지만, 예전의 나는 밥을 잘 먹는 사람이었다. 레귤러 사이즈 피자를 혼자 한 판 먹을 수 있을 만큼.
그런데 임신을 하자 식욕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배고픔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를 위해 억지로 먹었지만, 반 공기만 먹어도 배가 꽉 차 숨쉬기 어려웠다.
임신 초기엔 오히려 5kg이 빠졌고, 그 뒤로는 아이의 몸무게만큼만 늘었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더니, 엄마가 임신했을 때와 똑같다며 웃었다. 시어머니는 임신하면 살이 쪄야 한다고, 만날 때마다 걱정을 잔뜩 하셨다. 애가 제대로 크는지 불안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죄인이 된 것 같았고, 마음이 조급해져 병원에 자꾸 달려갔다.
의사는 여러 번,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는 잘 크고 있습니다.”
결국 아이는 조금 작게 태어났지만 아주 건강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빠를 닮은 건지 누구보다 잘 먹고, 상위 1%의 키를 자랑하는 큼직한 아이가 되었다.
문제는 나였다.
아이를 낳고도 식욕이 돌아오지 않았다. 임신 전의 식욕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나의 몸도 엄마처럼 깡말라갔다. 두 끼를 억지로 챙겨 먹어도 예전만큼 먹을 수가 없었다.
피자가 너무 먹고 싶어 두 판이나 시켜놓고도 막상 두 조각 먹고 포기하는 나, 라면을 양껏 먹고 싶어 두 개나 끓였지만 1/4 먹고는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내미는 나.
마음은 예전의 나를 기억하는데, 몸은 전혀 따라주지 않았다. 배가 불러오면 정말 더 이상은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느낌이 너무 낯설고, 묘하게 속이 허전했다.
그렇게 나는, 나도 이렇게나 마른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를 닮은 또 하나의 부분이었다.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날에도 늘 당기는 것이 있다. 바로 커피였다. 이 또한 엄마를 닮아 우스웠다.
아침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다.
카페인을 줄이려고 한 잔만 마시지만 사실은 아침·점심·저녁으로 세 잔도 마실 수 있다. 매일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커피는 그런 음료다.
나는 짠순이고,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누군가와 약속이 있지 않으면 카페에 가지 않는다.
대신 집에서 캡슐 커피를 마신다.
시중의 기계는 거의 다 사용해봤고, 캡슐도 하나하나 맛을 비교해보았다. 그리고 결국 내 취향에 딱 맞는 커피를 찾았다.
산미가 없고, 진하고 깔끔한— 남색의 스타벅스 에스프레소 캡슐.
어느 날 엄마에게 그 얘기를 꺼냈다.
“엄마, 이것저것 다 먹어봤는데 이게 제일 맛있더라. 엄마도 먹어봐.”
그러자 엄마는 너무도 익숙한 듯 웃으며 말했다.“엄마도 이것만 마셔.”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엄마와 이렇게까지 취향이 닮았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함께 웃으며 커피를 마시는 순간,
아— 나는 정말, 엄마와 닮아 있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