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내가 식물을 사랑하게 될 줄이야

by 김태은

나는 오랫동안 식물과 자연에 별 감흥이 없었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부모님 손에 이끌려 다녔던 여러 여행지들, 누구나 감탄한다는 절경들이 나에겐 그저 풍경 이상의 것이 되지 못했다. 나는 호텔 방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더 좋았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은 언제나 아쉬움이 섞여 있었다.

이렇게 빛나는 자연이 바로 앞에 있는데, 왜 아무렇지 않을까— 엄마는 아마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었다. 하늘은 그냥 하늘이고, 땅은 그대로 땅이었고, 나무는 그저 지나치는 나무였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하나둘 어른들이 늘어갈 때쯤. 나는 문득, 그들의 프로필 사진이 이상하리만큼 초록으로 채워져 있다는 걸 알았다.

산책 중 찍은 나뭇잎, 등산길에서 바라본 풍경, 가까이 들여다본 꽃 한 송이. 감성적인 사진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았고, 그저 ‘나이를 먹으면 풀을 좋아하게 되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정말 아무 감정 없이.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 말은 어느 순간 나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명확하진 않다. 그냥, 어느 날 문득 계절의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봄에는 가지 끝에서 작은 싹이 돋고, 여름엔 초록이 조금 더 진해지며, 가을에는 색이 서서히 바뀌는 모습이.

산책길에 작은 붉은 열매가 박혀 있는 나무를 마주하면, 이유도 없이 발걸음이 멈췄다. 해마다 반복되는 단풍인데도 초록이 노랑으로, 빨강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이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이건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이구나— 그런 감정이 스며들었다.


그때부터였다. 내 휴대폰 사진첩 속 식물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 건.
아직 프로필 사진을 초록으로 바꿀 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 한쪽이 이미 은은한 초록빛을 띠 된 것이다.


그 감정을 집 안에도 들여놓고 싶어져, 어느 수목원에 갔다가 이름 모를 식물들을 충동처럼 여럿 데려왔다. 우리 집은 한순간에 초록으로 가득 차고, 집에 들어설 때마다 기쁨이 솟았다.

처음엔 모든 이름을 기억하려 애썼지만, 지금은 몬스테라와 홍콩야자 정도만 떠오를 뿐이다. 아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애정의 용량이 딱 이 정도인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특별한 감정이 생겼다고 해서 손이 부지런해지는 건 아니었다.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주는 일까지는 어렵지 않았는데, 분갈이가 문제였다. 쑥쑥 자라나는 만큼 화분을 바꿔줘야 했지만, 나는 번번이 미뤘다.
다이소에서 흙과 화분을 사오는 일도, 신문지를 깔고 손에 흙을 묻히는 일도— 왜인지 모르게 마음의 체력이 필요했다.

시간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냥, 마음이 그만큼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식물들의 뿌리는 작은 화분을 밀어올리듯 가득 찼다. 마치 더 넓은 곳으로 데려다달라고 조용히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보면서도 매번 ‘아, 해야 하는데’ 하다가도 또 미뤄버렸다. 이번 주쯤이면 해낼 수 있을까.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자연을 향한 이 조용한 애정이 조금 더 자라서 어느 날 문득— 분갈이를 끝낸 화분을 바라보며 혼자 흐뭇해하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 그 정도면, 꽤 괜찮은 변화가 아닐까.






이 글을 쓴 뒤로 마음이 움직였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분갈이를, 드디어 해낸 것이다.


다이소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어떤 화분이 어떤 식물에 어울릴지, 우리 집 분위기와도 조화로울지를 조심스레 생각했다. 그러다 연한 회색빛과 촌스럽지 않은 황갈색의 큰 화분 세 개를 골랐다.


집에 돌아와 화분에 흙을 약간 과하게 쏟아붓고, 작은 화분에서 식물들을 조심조심 꺼내 옮겨주었다. 홍콩야자 하나, 이름을 잊어버린 튼튼한 줄기와 크고 단단한 잎의 식물 둘. 흙을 위로 살짝 덮어주자, 그동안 왜 이렇게 미뤄왔을까 싶을 만큼 분갈이는 순식간에 끝났다.


지금 그 아이들은 우리 집 뒤편 베란다에 가지런히 서 있다.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집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되었다.


예전에는 ‘빨리 분갈이를 해줘야 하는데…’라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면, 지금은 아주 작고 소소한 수고를 한 덕분인지 조금 더 ‘내 식물’ 같은 마음으로, 애정을 담아 바라보게 된다. 매일 스쳐 지나가면서도, 눈길이 한 번 더 머문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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