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축제도 하나요?
도서관의 일 가운데 가장 묘한 것이 있다면, 그건 ‘축제’다.
대부분의 사서가 떠올리는 업무는 자료실 관리와 독서문화프로그램 운영 같은 것들이겠지만, 이곳에서는 축제가 그 위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프로그램 운영에 덤처럼 붙어 있던 ‘축제’가 어느새 본체가 되어 버렸다. 1년 내내 진행되는 프로그램보다 이틀짜리 축제가 더 중요하다. 그게 이 조직의 순리다.
축제는 보통 9월에서 10월 사이, 날씨가 가장 좋을 때 열린다. 가을의 그 며칠을 위해 담당자는 반년을, 길게는 1년을 준비한다. 기간은 예산에 따라 달라진다. 돈이 많을수록 준비는 더 길어진다. 기이한 논리지만, 사실이다.
이름도 다양하다. 독서대전, 북페스티벌, 책 축제, 야외도서관.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거의 같다. 작가 초청 북토크, 체험 부스, 원화 전시, 그리고 아이들이 잠깐 웃다 가는 공연.
그리고 시장과 의원들이 얼굴을 비추는 개막식.
도서관에서 하는 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들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도 늘 비슷한 구성이 반복된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그저 그런 행사다. 크게 볼 게 없어 굳이 찾아올 일은 없지만 지나가다 보이면 한 번쯤 둘러볼 만한, 그 정도의 흥미.
하지만 직접 축제를 만드는 입장이 되면, 그 ‘한 번쯤 둘러보는’ 가벼운 즐거움 뒤에는 놀라울 만큼 복잡한 일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행사’라기보다 일종의 전쟁에 가깝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듯, 패배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패배의 이유는 단 하나다. 사공이 너무 많다.
이상하게도 ‘축제’만큼은, 모두가 자신이 더 잘 안다고 확신한다. 간부들은 “그건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해 “그건 원래 이렇게 해야 돼”로 끝난다.
담당자는 수십 개의 축제를 분석하고, 설문조사를 모으고, 이전의 문제점을 고치려 한다. 하지만 기획안은 늘 같은 방식으로 돌아온다. “이건 작년에 좋았잖아.” 그 한마디면, 모든 논의가 끝난다.
담당자가 보기에는, 그 ‘좋았던’ 공연은 시끄럽고 부실했고, 그 ‘인기 많았던’ 작가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하지만 간부가 보기에는 달랐다. 자신이 제안했던 것들이었으니까. 자기가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결국 담당자의 열정은, “나는 좋았는데. 올해도 똑같이 가지.” 그 한마디에 조용히 꺼진다.
축제는 반년 전의 ‘기본계획’부터 시작된다. 그때 간부가 주장한 내용이 문서에 실리면, 그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 된다. 시작부터 틀린 축제는, 끝날 때까지 계속 틀린다.
담당자는 이용자가 즐거워하길 바라고, 간부는 시장이 웃는 사진을 원한다. 하나는 ‘진짜 있는’ 축제를 만들고 싶어 하고, 다른 하나는 ‘있어 보이는’ 축제를 만들고 싶어 한다. 결국 이기는 건 늘, 우리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 도서관의 축제는 언제나 ‘있어 보인다.’ 사진 속 사람들은 웃고, 기사 제목은 화려하다. 하지만 그날의 현장은 늘 엉망이다. 덥고, 시끄럽고, 동선은 꼬여 있고, 아이들은 울고, 부모들은 짜증을 낸다. 이용자 설문에는 익명으로 불만이 잔뜩 적힌다.하지만 간부는 그것을 보지 않는다.
“보도자료 봤나? 잘 나왔더군.”
그 말 한마디면 끝이다. 마치 현실보다 사진이 더 중요하다는 듯이.
가끔 나는 생각한다. 이런 축제, 몇 천만 원을 태워가며 하는 이유가 뭘까. 진짜 축제를 위한 건가, 아니면 축제가 열렸다는 사실을 기록하기 위한 건가.
아마 후자일 것이다. 사진 한 장, 기사 한 줄. 그리고 모두가 잊는다. 다음 해가 오면, 같은 축제가 다시 열린다. 똑같은 이름, 똑같은 실수, 똑같은 박수 소리.
그 안에서 일하는 나는, 매년 조금씩, 조용히 피로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