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과 신속집행

숨가쁜 도서구입

by 김태은

도서관의 ‘수서’란, 구입할 자료를 선별하고 수집하고 등록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사서의 손끝에서, 한 자료실이 어떤 책들로 채워질지가 결정된다. 그러니 수서는 사서 업무의 꽃이라 할 만하다.

수서는 각 자료실 담당 사서의 고유한 영역이다. 한 번 구입할 때마다 천만 원 단위의 예산이 움직인다. 알라딘이나 교보문고의 도서 목록을 출간일 순으로 정렬해놓고, 하나하나 눌러보며 어떤 책을 살지 고르는 일. 단순하지만, 묘하게 정신이 깎여나가는 작업이다.


하지만 사서를 더 지치게 만드는 건 따로 있다.
그것은 ‘신속집행’. 어쩐지 이름부터 숨이 찬다.

신속집행은 말 그대로 예산을 얼마나 빨리 쓰느냐를 평가하는 제도다. 1년 예산 중 60%, 많게는 70%를 상반기 안에 소진해야 한다. 1분기에만 30% 이상을 집행하면 합격이다.

도서관의 일도 결국 시청의 일이기에, 속도를 요구받는다. 책에도, 사서에게도.
부서별 집행률이 순위로 매겨지고, 하위권은 고위 간부의 호출을 받는다. “왜 신속집행을 못 했냐.”

질책을 듣고 돌아온 간부는 또 우리를 질책한다. 책을 얼마나 신중하게 골랐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어떤 책들로 도서관을 채웠는지도 관심이 없다. 그건 평가 항목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도서관의 도서구입은, 이용자들의 요청과 출간 시기를 고려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늦어도 두 달에 한 번 꾸준히 구입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신속집행을 위해 상반기에 몰아서 책을 산다. 하반기도 여섯 달이나 남는데 말이다.

결국 도서구입 예산이 1억이라면, 6월까지 7천만 원을 써야 한다.

그래서 상반기의 수서는 늘 전쟁 같다. 목록을 만들고, 계약을 하고, 납품을 받고, 검수를 하고, 그 와중에 다음 구입 목록을 또 작성한다. 결국 신속집행 목표를 채우려면 새로 출간된 책을 그냥 쓸어 담는 수밖에 없다.

신착도서 서가에는 사서의 선택이 아니라 ‘속도’가 자리 잡는다. 도서관의 정체성은 그렇게 조금씩 희미해진다.


반면, 하반기는 남은 3천만 원으로 버텨야 한다. 그래서 희망도서가 밀린다.

두 달도 더 전에 희망도서 신청했는데, 도대체 언제 들어오나요?”

그런 전화가 잦다. 그때마다 우리는 죄송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죄송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제도 안에서 살아남으려 할 뿐이다.

나는 아직도 도서구입이 왜 신속집행 대상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입직한 뒤 내내 이 제도에 시달려왔지만, 단 한 번도 그게 도서관에 도움이 되었다 느낀 적이 없다. 빨리 쓴 예산이 반드시 잘 쓴 예산은 아닐 텐데.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언젠가 도서구입이 신속집행 항목에서 빠져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책을 살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더 나아가 신속집행이 사라져서 모든 예산이 조금 더 느리고, 적절하게 쓰일 수 있다면.

그게 언젠가 현실이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때가 오면, 나는 아마 서가 앞에서 아주 천천히 책 한 권을 고를 것이다. 제도도, 속도도, 예산도 없이.

그저 책 한 권이, 도서관의 공기를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