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7년, 10년. 떠나지 않는 이들
우리 도서관의 ‘붙박이 직원들’ 중에는, 유독 아픈 사람들이 많다.
몸이 아픈 사람도 있고, 마음이 아픈 사람도 있다.
오늘은 그중,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이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랬던 건지, 아니면 일하면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도서관에 왔을 때, 그들은 이미 그곳에 있었다.
조울증, 조현병, 공황장애.
그런 병명들이었다.
그 셋 중 한 명, 조울증을 앓고 있는 직원과 같은 팀이 된 적이 있다.
처음엔 평범해 보였다. 조금 우울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조용하고 온화했다.
가끔은 들뜬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다. 퇴근하고 같이 놀러 가자고 하고, 주말에 내가 배우는 걸 자기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다른 직원들은 그녀를 ‘아픈 사람’이라고 소개해주었다.
나는 그녀의 아픔에 대한 말들을 너무 많이 들어서, 처음엔 오히려 안타까웠다.
그런데 함께 일하게 되자 금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주 작은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아니, 가끔은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일은 잘했다. 전화가 오면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외의 일 —기안, 계획, 구입, 응대, 민원 처리— 그런 건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일이 생기면 갑작스레 병가를 냈다.
기한이 이틀 남은 상태에서 아무것도 처리하지 않은 채 “오늘은 머리가 아파서”라며 사라졌다.
대행자인 나는 그 일을 대신 처리했다. 내 일은 그대로 둔 채, 그녀의 ‘조금 중요한’ 일까지 떠안았다. 관장님도, 다른 직원도,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리고 반복되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잖아. 아픈 사람이니까.”
늘 같은 음으로 이어지는 그 말은, 도서관에서 모든 것을 무력하게 만드는 주문이었다.
며칠 후 내가 그녀의 일을 끝마쳐두면,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왔다. 그렇게 계속 반복되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동안, 그녀의 자리는 ‘책상’만 남고, 그 자리를 메우는 건 언제나 나였다.
내가 그녀의 업무로 인한 과중함을 호소하면, 시설 관리 아저씨들은 나에게 너무하다고 했다.
“불쌍한 애잖아. 별 거 아닌데 대신 해줘.”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1년 만에 도서관을 옮기며 그 사람에게서 벗어났지만, 그녀와 함께 일하게 된 다른 사서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일을 시키면 꼭 병가를 내요. 결국 제가 다 해요.”
나중에는 연가도 병가도 다 써버려서, 그냥 무단결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감사팀도, 인사팀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를 안쓰러워한 모두가 합심해, 조용히 숨겨 주었기에.
안쓰러워하지 않은 건 단 한 사람 —
그녀의 일을 대신해 온 사서뿐이었다.
1년 중 절반은 ‘없는 그녀’로 인해 사서는 지쳐 있었지만, ‘모두’에게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7년이 지나서야 그녀는 부서를 옮겼다. 나아져서가 아니었다. 새로운 ‘아픈 사람’이 들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기묘하게도, 그런 교체의 순서가 존재하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후,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는 다른 부서에서도 병가와 결근을 반복하다 결국 의원면직을 냈다고 했다. 그녀로부터 피해를 입었던 남겨진 사서들은 허탈했다. 7년 동안의 피로와 불평이 이상하게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녀를 불쌍해했던 나이 많은 직원들은 달랐다.
“도서관에서 좀 더 데리고 보듬어줬어야 했는데. 다른 부서는 너무했네.”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멍해졌다.
여기는 직장이다. 그 사람도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매달 월급을 받아가는 이용자가 아닌데.
그녀의 일을 대신해 두 배로 일했던 사람은 아무도 안타까워하지 않았는데. 힘들다고 말하면, “아픈 사람 배려도 못 해주는 사람이야?” 그런 말이 돌아왔었는데.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 도서관은 일터가 아니라, 일종의 자선단체였다.
국민의 세금으로, 아픈 사람들에게 매달 이백오십만 원의 월급을 기부하는 곳.
그리고 그 기부금은, 결국 같은 팀의 누군가가 대신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