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진 Jul 06. 2022

22-07 도서관 이용교육 마무리

전입교사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난 후에 바로 전체 교무회의가 있었다. 전체 교무회의에서 전입교사 30여 명은 단상으로 나가 자신의 각오를 한 마디씩 하고, 교장선생님께 환영의 꽃다발을 받았다. 나는 열심히 하겠다는 말보다 더 멋진 말이 생각났지만 하지 않았다. 튀지 말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여러 사안 중 도서관에 관련된 이야기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이 학교 교장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의 독서에 매우 관심이 많으셨다. 이 학교는 실업계 고등학교이고, 아이들은 졸업하면 대부분 대학 진학이 아닌 취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매주 1시간 '독서' 시간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겠다는 것이 교장선생님의 의지였다. 하지만, 많은 교사들은 도서관 이용과 아이들의 독서 교육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고, 그 이유는 도서관의 위치가 교내에서 너무 외진 곳에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과 너무 노후해서 아무도 가고 싶지 않은 도서관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지만, 그게 나 때문도 아닌데 나 혼자 얼굴이 빨개지며 당황해버렸다. 그 의견을 들으며 아이들이 도서관에 모이지 않는 이유가 정말 거리 때문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후 '독서' 시간이 5교시에 마련되긴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 아무거나 하는 시간 또는 핸드폰 하는 시간이라고 읽힐 것이 분명해 보였다. 


며칠 후 교감 선생님께서 면담을 하자고 하셔서, 학교도서관 운영 계획 초안을 가지고 교감선생님을 찾아갔다. 1년 동안 이런이런 일들을 (사실은 작년과 똑같이) 계획하려고 합니다. 정도를 보고하려고 했는데, 교감선생님은 도서관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으로 윤독을 제안하시는 게 아닌가. 아마도 교감선생님도 그날 교무회의에서 도서관 이야기가 나온 것에 신경이 쓰이셨던 것 같았다. 윤독은 여러 사람이 같은 책을 돌려가며 읽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초등학교에서 많이 하는 활동이고, 사실은 유행이 훨씬 지난 독서운동이며, 이미 이 학교는 윤독도서를 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몇 년 전 없어진 제도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을 설명드리면서, 나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말았다. 


제 생각을 조금 말씀드려도 될까요?


튀지 말아야 한다. 학교에서는 튀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J의 말을 떠올렸지만, 내 생각이 있는데, 말하지 않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것은 아니지만, 그냥 문득 드는 생각을 말씀드렸다. 첫째, 도서관을 활성화시키는 것과 아이들의 독서량을 늘리는 것은 접근 방법이 달라야 한다. 둘째, 도서관의 입지는 이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위치를 옮기는 일이 당장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라면, 이 부분을 극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우선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드렸다. 그래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독서' 시간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도서관에서 수업을 진행해 보겠다는 얘기를 하고 말았다. 


교감선생님은 도서관 이용교육?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뭐 가르칠 게 있나?라고 내게 물었고, 나는 도서관 이용교육 계획서를 보여드리며 말했다.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지금 학교도서관은 마지막 도서관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으니까요. 물론 공공도서관을 이용할 수도 있겠죠. 근데,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이용에 관한 교육을 한번이라도 받은 아이들이라면 공공도서관에 가서도 쭈뼛거리지 않고 800번은 문학이었지 참. 이라며 자신 있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 학습 경험을 주고 싶어요. 


그렇게 학기 초 1학년을 대상으로 시작한 도서관 이용교육 13개 반이 모두 끝이 났다. 책 제목으로 이야기 만들기를 너무 잘해서 내가 놀랐던 반도 있었고, 담임 선생님이 함께 오셔서 수업에 참여해 주어 수업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 반도 있었다. 반마다 너무 아이들의 분위기가 달라서 다양한 분위기에 적응하며 수업하는 연습이 되었고, 너무 말을 듣지 않아 선물을 하나도 풀지 않았던 반이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나의 옹졸함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나도 자라고 있다. 


얼마 전 교감선생님이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오셔서, 도서관 이용교육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했더니, 그럼 2학기에는 2학년을 하는 건가? 하셔서 나는 눈이 땡그래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뭐 못할 건 없는데..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22-06 3개월이 되어서야 보내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