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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Jul 01. 2022

22-06 3개월이 되어서야 보내는 편지

오늘과 내일은 체육축제가 있는 날이어서 학교가 들썩들썩 하지만 도서관은 외진 곳에 있고, 심지어 아무도 부르는 이가 없어 나름 조용한 하루를 만끽하고 있어요. 점심을 먹고 오니 학생 720명 중에 왁자지껄한 체육축제보다는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좋은 아이들 두어 명이 책을 보고 있어서,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벌써 이곳에 온지도 3개월째고, 그곳을 떠난지도 그만큼 되었어요. 별일 없이 안녕하신지 문득 안부가 궁금할 때 많았는데, 이제야 안부를 여쭈어 보게 되었어요. 


3월 학기가 막 시작하고,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께서 도서관에 오셔서 리모델링을 해야겠다고 하셔서 조심스럽게 내년에 정교사 선생님이 오시면 하는 게...라고 뺐는데, 친구들 말이 학교의 어려운 일은 원래 기간제가 다 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3월과 4월에는 도서관 출장만 다섯 번을 다녀오고 도서관 인테리어 업체 섭외해서 시설부에 연결해주고 회의하고 막 그랬어요. 친구들이 제게 딱 하나 학교에서 지키라고 했던 게 있었는데, 절대로 튀지 말라고. 그런데 저는 이미 프로필과 경력과 나이에서 어쩔 수 없이 온몸으로 튀고 있어서 일이 많은 것 같아요. ㅎ 


그럼에도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건 생각보다 즐거워요. 일주일에 한 시간, 수요일마다 1학년 학급을 대상으로 도서관 이용에 관한 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어제 한국 십진 분류표의 500번대 기술과학(응용과학)을 설명하다가 의학, 농학, 원예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예를 들었더니 아이들이 꽃 가꾸는 거요? 하길래 응. 근데 원예는 꽃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채소, 과수, 화훼를 모두 원예라고 불러. 너네 몰랐지?라고 설명을 해줬지 뭐예요. 동아리도 하나 맡으라고 해서, 매주 한 시간씩 산책하는 동아리를 맡아서 아이들과 교내를 걷기도 하고, 가까이에 있는 전북대 익산캠퍼스에 가서 놀다 오기도 하고.. 근데 얘들아~! 를 한 백만 번쯤 외치는 것 같아요. 걷다 오는데 목이 아파요. 저의 봄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답니다. 


지금 학교에서는 친한 사람도 없고 오롯이 혼자지만, 혼자여도 괜찮은 곳인 것 같아요. 기댈 곳이 없어서 오히려 외롭지 않은 것 같아요. 5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제가 배운 건, 아마도 혼자 외롭지 않은 법 같은 것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혼자가 아니었지만 혼자였고, 그럼에도 외롭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상한 말인 것 같은데 그랬어요. 그런 제게 외로울 때마다 저의 비빌 언덕이 되어 주셨고, 대나무 숲이 되어 주셨어요.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찾아뵐게요.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요. 가끔 이렇게 안부 편지로 대신할게요. 가 맞을 것 같아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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