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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Sep 15. 2022

H 마트에서 울다

자주 상상을 한다. '내 옆에 엄마가 없다면'이라는 상상을 꽤 자주 하지만 구체적인 결론에는 이르지 못하고 생각을 접고 만다. 두려움 때문에 상상은 해보지만 다시 두려움 때문에 그 상상을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모든 엄마와 딸이 나처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나는 엄마와 함께 살아온 기간이 다른 내 또래의 여자들보다 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40년을 함께 살았으니까.


이 책은 엄마의 죽음을 맞이한 딸의 이야기이다. 저자 미셀 자우너는 한국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다. 엄마가 한국 식재료를 사기 위해 들렀던 H 마트에 들어서서 엄마 또래의 여자를 봤을 때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를 그리워하기보다 주인공은 건강하게 살아있는 여자들에게 질투를 느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굉장히 사실적인 감정이 화려한 꾸밈없이 그대로 담백하게 쓰여있고, 부모에게 반항하며 음악을 위해 살았던 딸이 삶을 마감하는 엄마와 마지막을 보내며 느꼈던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 엄마와 함께 일상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 일상이 사라졌을 때 마주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예방주사라고 해야 할까? 눈물로 이 책을 마감하게 될 것 같아 외면하고 싶었지만 백신을 맞는 심정으로 읽었다.




나는 사랑은 행위이고, 본능이고, 계획하지 않은 순간들과 작은 몸짓들이 불러일으키는 반응이며,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43


우리 결혼이 좀 더 이상적인 환경에서 시작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내 앞에 놓인 미래를 용감하게 걸어 나가는 데 오직 이 남자 하나뿐이면 된다는 확신을 준 게 바로 이 시련이었다. 244


나는 몇 년 뒤에 똑같은 감정과 맞닥뜨릴 내 모습을 상상했다. 엄마의 죽임이라는 벌에 쏘이는 그 순간부터, 나란 존재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평생을 벌침이 박힌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내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도 울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서로의 티셔츠에 얼굴을 파묻고 한바탕 서럽게 흐느꼈다. 248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였다. 엄마는 내 존재와 성장 과정의 증거를 보존하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모습을 순간순간 포착하고, 내 기록과 소유물 하나하나 다 보관해 두면서. 엄마는 나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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