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9년, 아주아주 먼 미래 이야기
쫓겨난 내성종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기이한 소문이 있었다. 쿠알라룸푸르의 케퐁 지역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두 시간쯤 차를 타고 달리면, 도피처가 위치한 숲이 나온다고. 그 도피처는 지하에 감춰져 있거나 돔으로 덮여 있지 않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것을 그대로 맞으며 더스트 이전의 마을처럼 그저 놓여 있는데, 내성이 없는 사람들도 그곳에서는 멀쩡히 살아간다고. p012
아영은 그렇게 느리고 꾸물거리는 것들이 멀리 퍼져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천천히 잠식하지만 강력한 것들,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정원을 다 뒤덮어버리는 식물처럼. 그런 생물들에는 무시무시한 힘과 놀라운 생명력이, 기묘한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영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p082
지금부터는 실험을 해야 해. 내가 가르쳐준 것, 그리고 우리가 마을에서 해온 것들을 기억해. 이번에는 우리가 가는 곳 전부가 숲이고 온실인 거야. 돔 안이 아니라 바깥을 바꾸는 거야. 최대한 멀리 가. 가서 또 다른 프림 빌리지를 만들어, 알겠지? p242
지수가 정말로 레이첼에게 멸망에 대한 책임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솔라리타 연구소 소속이었다고 해도 이 사태가 연구원 한 명의 의지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솔라리타의 대책 없는 연구자를 부추긴 건 기후 위기를 간단한 솔루션 하나로 해결해 보려는 데에 얄팍한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 전부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인류를 구하는 일에 관심이 없는 건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돔 시티 안팎을 돌아다니며 지수가 도달한 결론은, 인간은 유지되어야 할 가치 있는 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