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진 Nov 10. 2022

22-17 끝이 났고, 수고했다.

사제동행 독서 멘토링 본선대회를 마치고

학기 초부터 내 마음을 힘들게 했던 가장 큰 행사가 오늘로 마무리되었다. 며칠 전부터 점심때마다 마주치는 선생님들은 행사 준비하시느라 고생이 많지요?라는 인사말을 건네시곤 했다. 나는 아니요.라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코로나로 2년 동안 사제동행 독서 멘토링 대회는 발표회 없이 그냥 아이들의 활동지를 가지고 평가하고, 상을 주는 간략한 행사로 마무리한 것 같았다. 학교에 사서교사가 배정되고 첫 해에도 국어과에서 진행했던 행사처럼 한 학년을 모두 모아놓고 크게 발표회를 진행하진 않았기에 아마도 많은 선생님들이 이 부분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개선된 모습을 보여줄 첫 번째 타자에 내가 당첨된 것이다. 


물론, 나도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서 15팀의 6주 동안 활동을 최대한 조용히 살금살금 진행했다. 그리고 본선에 진출한 8개 팀만 따로 불러 간단히 발표하고, 심사해서 상주고 마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었고, 결국 1학년 전체 학급 총 250여 명의 아이들과 2학년 일부를 불러 강당에서 발표회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교감 선생님은 국어과 선생님들을 다 불러 모아 협조를 구하는 자리를 만드셨고, 점점 일이 커져가는 회의 속에서 난 그저 망했구나라는 생각만 했다. 


날짜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8팀의 아이들이 거의 매일 나를 찾아왔고, 나도 거의 매일 문자를 보내 각 팀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1학년 4팀과 2학년 4팀, 총 8팀이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는데, 1학년과 2학년의 차이가 좀 심했고, 아예 갈피를 잡지 못하는 팀도 있었고, 이 발표회의 취지를 잘 못 해석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발표 3일 전까지도 발표 준비를 시작도 못한 1학년 팀이 나타났고, 결국 기권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니, 기권은 없어.


어렵지 않아. 생각해보자! 자. 발표를 준비하는 너희들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지금 앉아서 너희의 발표를 듣는 아이들이 도대체 뭘 듣고 싶은 걸까?를 생각하는 거야. 도대체 사제동행 독서 멘토링은 어떻게 하는 거야? 그거 하면 뭐가 좋아? 재밌어? 에이 재미없을 것 같은데?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 줄 건지를 생각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어. 

무슨 책을 읽었는지, 그 책은 어떤 책인지, 그 책을 읽으면서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 선생님과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 선생님과 얘기하는 거 어색하지는 않았는지, 그럼 그 어색함을 어떻게 풀었는지, 6주 동안 한 주도 안 빠졌는지, 빼먹은 주는 어떻게 했는지 무수히 많은 그들의 궁금증에 해답을 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거야.


이렇게 어르고 달래서 돌려보냈는데, 오늘 아침에 찾아와 이거 넣을까요 뺄까요. 를 나와 고민하다 돌아갔다. 그런데 순서가 되어 걱정스럽게 보고 있는데, 너무도 진지하게 차곡차곡 그간의 활동을 설명하는 게 아닌가. 이런 아이들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갑자기 너무 놀라서 고개를 돌렸는데, 얌전하신 멘토 선생님도 참을 수 없었는지 핸드폰을 꺼내 아이들이 발표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게 보였다. 


8팀 발표가 모두 끝나고, 아이들은 돌아가고, 나는 책상과 의자 정리를 했다. 도서부 아이들 몇몇이 나를 도와주었다. 도서부 아이들까지 모두 돌려보내고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길, 조용한 교정을 걷는데 몸은 너무 무겁고 힘들었지만, 발걸음만은 가벼웠다.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조용히 하아. 하고 소리 내어 큰 숨을 내 쉬어 보았다. 


끝이 났고, 수고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22-16 우당탕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