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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외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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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Mar 19. 2023

심심해서 씁니다.

서울이 아닌 이곳에 내려오면서 내가 제일 처음 결정한 일은 관계를 맺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사회적, 인간적 관계가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에 큰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관계지향적, 관계의존적 인간임이 확실했다.


나는 아는 사람도, 아는 곳도 없는 이곳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바보였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어떤 부탁도 흔쾌히 들어주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활짝 열려있었고, 그들의 시간에 맞추고, 그들이 하자면 했고, 가자면 갔다. 거절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그녀를 만났고 그녀와 급격하게 친해지게 되었고, 속된 말로 나는 그녀의 꼬봉이 되었다. 사실 나는 내가 그녀의 꼬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늘 나서기 좋아하는 그녀에게 배경처럼 앉아서 그녀를 빛내주는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게 나였다는 것쯤은 나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맞춰주고 있다는 것도, 그녀가 나에게 무례하게 대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냥 그렇게 지내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고, 항상 그녀보다 못한 내가 되는 편이 반대인 경우보다 편했다. 아마 나는 그녀보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이 아무렇지 않았던 것 같고, 가끔 그녀가 귀엽기도 했다. 뭐 그녀도 나에게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최선이 나를 위함은 아니었고 그녀의 안위를 위한 일들이었음을 안다.


그런데, 참을 수 없는 어떤 상황에, 참기 어려운 그녀의 행동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즉 취향이라는 것을 사실 그녀는 옳고, 그름의 범주에 넣어버리고 자기와 좋아하는 것이 같지 않다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긴 했다. 하지만 뭐 그것도 넘어가 줄 수 있었는데, 극단적인 상황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나와 완전히 다른 것을 발견했고, 그날 그녀에게 모든 정이 떨어져 버렸다.


정이 떨어지면 그게 끝인 것 같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이제 나에게 친구 따위의 것을 찾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건 진정한 외로움이 아니라 심심했던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녀에게 안녕을 고하고 나니 너무 홀가분했다.


그리고 이제 외로워서 글을 쓰지 않고, 심심해서 글을 쓰게 되었다.

외로움과는 이제 안녕하게 되었다.

얼마나 큰 성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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