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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Nov 29. 2023

관광 고사 후기(feat.중꺾그마)

나와 약속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자신의 한계랑 싸우는 건 에베레스트 등반대만 하는 게 아냐. 나도 매일 주저앉고 싶은 나 자신과 싸우면서 산다고.




내가 지금도 좋아하는 '메리 대구 공방전'이라는 드라마에서 황메리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올 한 해 매일 포기하고 싶고, 매일 주저앉고 싶은 날들을 보내며 살았었다. 사실 관광고사를 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주저앉은 것과 다름없었지만 올해 나의 목표는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이었으므로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위로했다. 그래서 주저앉았지만 주저앉지 않았다는 말로 이 글을 시작해 본다.


시작은 한국사였다.

나는 우연히 알게 된 선생님의 초대로 초등학교 사서교사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여러 선생님들 중에 나 혼자 기간제 교사였는데, 이 선생님들의 공통점은 많은 나이에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합격하신 분들이라는 점이었다. 지금 내 나이에 임용고사를 도전해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선생님들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사실 나는 그때만 해도 시험을 보아야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들께 우선 한국사 시험을 통과해야 하니 그것부터 도전해 보겠다고 말했다.


인강 등록

한국사 시험을 79점, 2급에 성공하였다. 임용고사를 정말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뭐든 시작은 잘하는 나의 성격상 이미 인터넷 강의를 알아보고 있었다. 뭐 어때 관광고사(관광하듯 고사장에 가는 것) 본다 생각하고 준비해 보자라는 가볍고 가벼운 마음이었다. 사서교사 인터넷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은 2명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조금 젊은 선생님을 선택하여 1년 커리큘럼으로 수강을 신청했고, 책도 집으로 마구 배달됐다. 1-2월 방학에는 그래도 전공과 교육학을 번갈아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개학을 하자마자 학교 일도 바쁘고 마음도 해이해저서인지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스터디를 시작하다.

강의를 시작할 때 임용카페 게시판에는 스터디를 구하는 글이 굉장히 많이 올라온다. 나는 초수인 데다 일과 학습을 같이 병행하고 있고, 그리고 나이가 너무 많았다. 괜히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두려웠고, 스터디를 끝까지 잘할 자신도 없었다. 그냥 혼자 가기로 마음먹은 참이었다. 이런 나의 상황을 다 꿰뚫고 있는 듯한 모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께서는 교생실습을 나온 내 또래 선생님을 내게 소개해 주며 함께 스터디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셨고, 자신 없는 나는 일단 소개해준 선생님을 만나는 보겠다고 고마움에 대한 답을 드렸다. 소개해주신 신선생님을 만났고, 결국 나는 스터디를 하게 되었다. 결국 공부는 나와의 싸움이고 혼자 걸어가야 하는 길이 맞지만, 그래도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처럼 신선생님은 내게 늘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일정을 짜서 2주에 한 번, 도서관에서 만나 스터디 룸에서 4시간에서 5시간을  수다와 공부를 함께 나눴고, 대충이지만 전공 8과목을 한 번은 다 보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시험에 점점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위기는 늘 있지

올해 학교는 6개월 연장을 했기 때문에 남은 6개월을 공부에 올인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학교를 구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를 구해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 집 근처에 있는 중학교에서 당장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생각보다 빨리 계약이 이루어졌다. 맘 편히 여름방학을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학교와 계약에 문제가 생기면서 결국 나는 2학기에 학교를 놓치고 말았다. 그렇다면 실업급여를 받으며 공부를 하면 되지 않겠냐고 주변에서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국 방학을 불편한 마음으로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못한 채 개학을 했고, 개학하고 2주일 후에 나는 백수가 되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백수가 되었는데, 백수로 살기는 나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기였다.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 구직사이트만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어디라도 가자라는 생각에 결국 학교를 구하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나는 나의 위기를 극복한 셈이다.


중꺾그마

새로운 학교는 사립 중학교였기 때문에, 내가 다녔던 국립 고등학교와는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내가 가는 학교는 왜 늘 북트럭에 책이 한가득 쌓여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청소와 대출대 정리를 하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이 학교에 적응하느라고 공부는 아예 손을 놓아버렸고, 집에 오면 씻고 자기 바빴다. 결국 시험을 봐서 뭐 하나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보려는 생각을 버리면 그냥 시험은 볼 수 있는 거잖아?라고, 그럼 관광고사라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자.라는 올해 나의 다짐이 생각났다. 올해 나는 어떤 상황이든 일상을 유지하는 힘에 대한 고민이 많았었다. 그런 힘을 기르고 싶었다. 어떤 상황에도 내가 약해지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힘은 결국 일상을 묵묵히 유지해 나가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인 것이다. 결국, 나와의 약속은 지켜졌다.


아무 말 대잔치

오빠는 컴퓨터용 사인펜은 챙겼냐고 물었다. 오빠. 이 시험은 모두 주관식이야. 사인펜이 아니라 검정 볼펜이거든?이라고 말해 주었다. 진정 관광고사 답게 나는 답안지에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 나왔지만, 3교시 마치는 종이 울렸을 때 왠지 모를 뿌듯함과 자신감이 함께 생겼다. 하면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음도 내년 하반기가 되면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내년에 만약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내게 찾아온다면 꼭 이 글을 다시 꺼내 보기로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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