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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Dec 04. 2023

저녁수영 그리고 똥멍청이

날씨가 자꾸 추워지니 내 의지도 자꾸 사그라드는 것만 같다. 그냥 집으로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나와의 내기에서 이겨 차를 수영장으로 몰고 갔지만, 샤워를 하면서 또다시 나는 뜨거운 물로 샤워만 하고 그냥 집으로 갈까를 또 고민하다 수영복을 입었다. 이틀 모두 그랬다. 샤워를 하다 일전의 그 아는 분을 만나 눈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날씨 얘기를 주고받지 않았다면 샤워만 하고 집으로 왔을 수도 있는 날들이었다. 


드디어 2,000 미터를 넘었다. 1시간 5분 이내였다. 내가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른다. 자유형을 시작하고 300미터까지는 숨이 차고 힘들지만 그 시기를 넘기고 나면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로 25 미터 벽을 찍고 돌고, 벽을 찍고 도는 일만 반복한다. 그러던 중에 위기를 만나기도 하는데 내가 앞사람과의 간격 조정에 실패해서 앞사람의 발을 건드린다던지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때가 있다. 평형은 물 밖으로 머리가 나오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려고 할 때 내가 속도를 조절하면 되는데, 자유형은 나의 속도에 빠져 아무 생각 없이 가다가 앞사람의 발을 칠 때가 있다. 또는 숨 고르기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출발선에 서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도 자칫 서 있는 사람을 건드릴 수가 있으니 중앙으로 가서 벽을 찍고 돌아 나와야 한다. 


그런데 몇 바퀴만 더 돌자라고 마음먹었던 그때 이상하게 사람들이 출발선에 몰려 있는 것이었다. 다들 저기 서서 무슨 수다를 하고 저렇게 하고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50 미터를 돌고 왔지만 서 있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고, 나 보다 먼저 출발한 사람이 속도가 너무 느려 좀 답답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적어도 10분은 더 왕복을 하다가 이제 쉬자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들었는데, 맙소사! 시간은 7시가 넘었어, 7시부터 그 레인은 자유수영 레인이 아니라 강습레인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수영을 7시 넘어서까지 한 적이 없어서 내가 몰랐던 것이었다. 옆 사람에게 여기 강습 중인가요? 했더니 안타까운 눈으로 네에. 하며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죄송하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당장 물 밖으로 나왔다. 아니 누구든 나를 좀 쳐서 이 상황을 알려주시지 왜 아무 말도 안 했단 말인가. 대상도 없는 분노를 삼키며 샤워실로 들어왔다. 


불쌍한 눈 빛으로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다. 그 레인은 일주일 내내 7시부터 강습이 있는 레인이라고. 아 네에. 그렇군요. 라며  샤워기 물살을 맞으며 나는 똥멍청이를 속으로 수 만 번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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