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여름, 그 바닷가

by 이유진



오래된 하드 디스크 속에서 이 사진을 찾고 나는 깜짝 놀랐다. 첫째, 이렇게 치밀한 여행 준비를 했던 인간이었나 내가? 둘째, 이 많은 물건을 우리는 다 들고 갔단 말인가. 그 생각을 더듬다 보니, 나는 그만 스물 다섯 여름, 그 바닷가로 돌아가 그날 하려던 하드 정리를 땡 치고 말았다.


사진 속 이름 옆에 숫자는 우리의 출석번호이다. A, B, C조로 2년간 세미나 수업을 같이 들었지만, 밥친구, 술친구, 대리출석, 등하교 친구도 아니었던 우리는 4학년이 되었을 때 각자 무리의 친구들이 모두 휴학을 하는 바람에 수업 시간표를 같이 짜고, 붙어다니다 친구가 되었다. 졸업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취업을 하게 되고, 왠지 만나지 않으면 하루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매일 만나 각자 직장생활을 리포트하고 또 경청했었다.


머리보다 더 올라오는 배낭을 메고 영등포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윤정이가 나타났다. 나 또한 머리 위로 올라오는 산악용 배낭이 집에 있었다면 그리하였으리라 싶을 만큼 빵빵한 배낭, 어깨와 양손에 짐, 윤정이는 거울 속에 나였다. 일찌감치 도착한 우리의 마음을 까맣게 태운 영주는 머리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기차 출발 10분 전에 도착했다. 영주를 발견하자마자 우리는 개찰구로 뛰기 시작했고, 영주를 혼낼 겨를도 없이 깔깔거리며 부산행 기차에 올랐다.


우리의 일정은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 부산에서 다시 배를 타고 거제도로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제도의 구조라해수욕장 근처 어느 민박집에서 묵기로 했는데, 부산에 내리니 앳된 서울 아가씨들을 잡아먹으려는 무서운 아저씨들이 쭉 늘어섰다. 배 타고 섬에는 뭐하러 들어갑니까. 그 섬에 들어간들 이 성수기에 누가 방은 준답디까?부터 시작하여 방을 구한 들 그 비싼 방값은 어쩔 거냐며, 날이선 부산 사투리에다 어떤 아저씨는 팔뚝에 하트를 뚫는 화살표 문신까지 있었으니, 덥석 겁이 났지만, 아저씨!!! 우리는 코베 간다는 서울에서 내려온 똑똑하고 당찬. 서울 아가씨라고요! 아저씨 앞에서 보란 듯이 거제도의 어느 민박집으로 그 새벽에 전화를 넣어. 일박 사만 오천 원을 아줌마에게 다짐받는다. 흥. 아저씨들을 향한 콧방귀 한방.


그렇게 실갱이를 하고도 배가 뜨기 전까지 우리에게 너무 많은 시간이 주어졌으니, 우리의 알뜰살뜰 윤정이가 남포동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로 가자 하여, 대형마트 열리는 시간까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네버엔딩 수다를 이어간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이것저것 식단에 맞추어 3박 4일 장을 본다. 구워도 먹고, 김치찌개에도 넣어야 할 삼겹살이 혹 거제도 들어가는 배에서 상하지나 않을는지 하는 기우에 윤정이가 아이스박스를 구해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영주와 나는 자갈치 시장으로 한걸음에 뛰어가 하얀 아이스박스와 얼음을 이천 원에 구하고, 거기에 삼겹살과 이것저것 시원해지면 좋을 것들을 차곡차곡 넣는다. 결국 우리의 짐은 자꾸만 늘어난다. 괜찮아 괜찮아 이건 다 우리가 먹고 올 건데 뭐, 서울에 올라올 땐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올라올 수 있어. 하는 야무진 꿈을 꾼다.


된장, 쌈장, 고추장, 파, 마늘, 갖은양념, 점심엔 샌드위치를 만들어먹자 하여 버터와 쨈, 그뿐이랴 부르스타와 돗자리, 프라이팬까지 챙겨서 떠났던 우리들이었다. 결국 상경해서 보니 우리의 짐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진 않았으니, 그때 꾼 꿈은 야무진 꿈이 딱 맞았다.


배에서는 처음부터 멀미에 관한 선전포고를 한 나부터 쓰러지고, 다음으로 영주 다음으로 윤정이까지 쓰러져 거제도에 내려서는 셋다 초주검이 되어, 결국 배에 대한 공포로 우리는 거제도에서 꼭 가봐야 한다는 외도 해상공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3박 4일을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거제도 바닷가에서 놀기를 반복했다.


살림꾼 윤정이 덕에 우리는 삼시 세 때를 단 한 번의 찬밥도 먹지 않고, 오로지 갓 지은 따끈한 쌀밥에 찌개와 반찬을 누릴 수 있었고, 누룽지가 먹고 싶다고 그렇게 애원했는데도 윤정이는 어쩔 수 없는 밥 짓기 실력으로 우리에게 누룽지를 만들어 줄 수 없었다. 바닷가에서 공던지기를 몇 번 같이 했던 남자아이들은 영주의 미모에 넋이 나가서는 우리를 찾겠다고 아니 영주를 찾겠다고 지들끼리 이 골목이 맞네 아니네 급기야 저기 서울에서.. 를 외치며 민박집을 다 쑤시고 다녔다. 어느 가정집 2층에 묶고 있었던 우리는 창문에 매달려 그들의 고군분투를 구경하며 혹시나 우리를 찾으면 어쩌지 하는 조마조마한 스릴을 즐겼다.


모래 성안에 조개껍질로 윤정이는 남자 친구의 이름을 찬란하게 새겼는데, 나와 영주는 각자의 이름을 처량하게 만들어 놓고도 좋아라 기념하여 사진을 찍었다. 물과의 씨름에 힘이 빠졌을 땐, 이것저것 넣어 만든 우리만의 샌드위치를 먹고, 해가지고 저녁이 되면 파라솔 아래서 호박 넣은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고, 돗자리에 누워 달을 보며, 바다를 보며 말도 안 되는 시를 읊어대고, 한쪽에선 민박집에 핀 봉숭아를 따와서 손톱에 물을 들인다며 돌에 대고 콩콩 찧으며 깔깔깔.. 나도 모르게 단숨에 추억에 잠긴다.


추억은 그 시절 나의 힘일 것이다. 스물다섯 내 힘이 만들어낸 이 추억은 지금 스물아홉의 지루한 일상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노란 영양제와도 같다. 그리고 이제는 스물다섯과는 또 다른 힘이 내게 있다고.. 그 힘은 스물다섯의 추억만큼 먼 훗날 내게 선사할 좋은 선물을 만들고 있는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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