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를 아직도 특별한 날이라 여기는 사람이 내 주변에는 많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저녁을 먹고 할 일이 없어진 나는 탁구장으로 갔다. 는 말은 거짓말.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하는 것이 조금씩 스트레스가 되면서부터 많은 고민들이 생겼고, 이따위 생산적이지 못한 고민은 나중에 하자.라고 차치했는데, 그 나중이 이제 온 것이다. 문제를 마주하니 서로 뒤 엉켜서 해결의 단서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괴로웠다. 조언을 구할 정도로 친밀한 사람이 내 기준에서는 아직 없었고, 속을 꺼내 보일만큼 신뢰할만한 사람도 탁구장에서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뭐 그리 대단한 무엇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문제가 자꾸 나의 욕심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정말 화가 났지만, 그것 말고는 내 머리를 합리화시킬 어떤 무기도 나에게 없었다.
이제 열심히 노력해도 늘지 않는 나의 실력, 뭐 그렇게 열심히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자꾸만 실력이 느는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 남자들이니까 라고 접어두었지만 매번 패만 기록하는 나의 경기 이력 등이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탁구장에서는 재력도, 학력도, 직업도, 나이도, 미모도 그 어떤 것도 무기가 될 수 없다. 오로지 단 하나 탁구 실력뿐이다. 순서를 기다리라고,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마음에서는 조언해주지만, 현실을 맞닥뜨리면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탁구를 치려면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종일 고민한 끝에 나는 일단 탁구장에 가서 연습을 하자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정말 엉뚱한 말이지만, 수사반장에서도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아저씨들은 혼자 현장에 가서 담배를 피워 물고 돌아다니곤 하지 않았는가? 나도 탁구장에서 연습을 죽어라 해보면 해결의 실마리라도 떠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뭐 어쨌든 그러니까 내 얘기는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면서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탁구장에 갔다는 말이다.
탁구장에 들어서니 홍 선배와 주 선배가 이미 와 있었다. 나도 그들을 보고 뜨악! 했지만, 아마 그들도 날 참 딱하게 보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정말 얼마나 할 일이 없는 아가씨면 크리스마스이브에 탁구장에 다 온 걸까? 라며. 아직은 어색했던 우리 셋은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탁구장을 지킬 줄 아는 의리 있는 멤버가 되어 일단 탁구장에서 나와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나는 순댓국과 소주 그리고 두 선배를 앞에 놓고 그간 혼자만 고민했던 문제들을 꺼내 놓았다. 이미 그들도 다 겪었던 일을 내가 따라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답을 알게 되었다. 답을 알게 된 순간 왠지 온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아직은 찜찜한 무엇이 남아 있지만, 적어도 이제 함께 풀어갈 동무가 생겼고, 그래서 앞으로 이들과의 만남을 잘 가꾸어 나가야겠다고 순댓국을 떠먹으며 다짐했다.
순댓국을 먹고 나오니 우리 머리 위로 작고 하얀 눈발이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