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만나고 왔다

by 이유진

책방 토닥토닥은 전주 남부시장 2층 청년몰에 있는 서점이다. 남부시장에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배가 불러서 돌아다니다 알게 된 서점이었다. 뻔한 전주는 알려주고 싶지 않아서 정수현이 이학건 님과 이정인 어린이와 전주를 방문했을 때 소개했었고, 류진아 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같이 차를 마시러 가기도 했다. 그러한 인연으로 책방 토닥토닥의 인별그램 소식을 받기 시작했고, 어느 작가와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하기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요즘 나는 쏟아지는 SNS 게시물과 유튜브 영상들 속에서 랜선이 아닌 얼굴을 마주하는 만남에 목말라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조금 외로웠던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그리웠던 것일까? 뭐 어느 쪽이던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그들이, 영상 속에 그들이 정말 땅을 딛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런 만남을 갈망하면서도 북적대는 작가와의 만남 속에 나는 가만히 앉아서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조용히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서 '작가와의 만남'의 작가가 시인인지 소설가인지는 별로 중요하진 않았던 것 같다. 다만 그저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공간에 함께 있고 싶었다.




책방 대표님은 나의 쪽지에 금요일 오후 7까지 오시면 된다고 흔쾌히 답을 주었다. 약간의 예의를 갖춰 나는 다시 쪽지를 보냈다. 7시 보다 먼저 도착해 작가님의 시집을 구매할 수 있는지 꽤나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09년 서울 국제 도서전의 주빈국은 일본이었고, 그즈음 나는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에 많이 빠져있었다. 퍼레이드나 악인과 같은 추리와 반전이 있는 소설도, 첫사랑 온천이나 7월 24일의 거리와 같은 말랑한 소설도 너무 재미있는 그런 작가였다. 그가 서울에 온다는 소식에 나는 생전 관심도 없었던 국제 도서전에 참가하러 삼성동엘 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그를 만날 시간을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무릇 작가와의 만남은 이 정도 성의가 있는 사람이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다시 한번 흔쾌히 가능하다는 답변을 주었다. 그의 즉각적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답변에 조심스러웠던 나의 행동이 내가 꽤나 답답한 사람임을 증명한 것 같았고, 없는 사람처럼 드러나지 않게 앉아있다 오려고 했던 내 계획과 조금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였을까? 금요일 오후 5시가 되자 갑자기 마음에 소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고 싶은 마음과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49대 51, 51대 49로 퐁당퐁당거렸다. 하지만 가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책방 대표님께 못 간다고 또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고, 그럼 또 나를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 나를 더 곤란하게 할 것 같아 결국 의자에서 일어나 책방 토닥토닥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시작 시간보다 좀 일찍 도착한 나는 시장 안에 있는 칼국수 집에서 수제비를 먹었다. 혼자 수제비를 먹으면서도 약간의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은 있었다. 첫 만남은 다 그런 거니깐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며 수제비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자 이제 책방에서 커피를 한 잔 홀짝이며, 시집을 좀 읽다가 작가님을 훔쳐보면 되겠군. 하고 토닥토닥에 들어섰다.


책방은 손님을 맞을 준비로 약간 어수선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나는 시집을 구매했고, 그리고 다른 책도 한 권 더 구매했다. 그러면서 책은 이제 알라딘 말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기서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일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시집을 열었다. 시는 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반면에 나는 그런 시를 쓴 시인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동안 째깍째깍 시간도 조금씩 만남의 시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중간에 또 다른 대표님이 보이차를 한 잔 주었다. 제가 사 먹어야 하는데요 했는데 웃음과 함께 따뜻한 차를 내게 건넸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음은 따뜻해졌는데, 머리가 갑자기 복잡해졌다. 어디서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잘 못 되어 가는 것 같았다. 7시가 다 되어 가는데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일어나서 집에 가야 할 것만 같았고,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숨어 있길 희망하고 여기에 들어선 지 채 30분도 안된 시간이었다. 저 그냥 일어나도 되는데요. 깔끔하게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만남으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고 두 대표님과 작가님께 말했지만 이미 내 발목은 잡혀 있었다. 약속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작가님께 그리고 대표님께. 제가 주목받는 어떤 상황도 만들지 않겠다고 말이에요. 그럼요 그럼요.라는 다짐을 받은 후 내 기대와 한참 멀어진 작가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이 어떻게 되었던 작가와의 만남은 정말 내게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어수선함과 어색함은 금방 사라졌고,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시인과 내가 마주 앉아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요. 라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너무 친근하고 너무 근사한 시간 모두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그리고 작가님이 지금 하고 있는 생각들, 고민들이 전부까지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이 이해되었다. 슬프지만 나는 그런 나이가 된 것 같았다. 그들의 고민을, 그들의 걱정을 다 한 번씩 해 본 나이. 하지만 답은 내리지 않았다. 그들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일 테니까 더 좋은 답을 가지게 될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갑자기 뿌듯해졌고,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작가님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특별하게 감사를 드리고 싶은 분이 계셔가지고요. OOO 선생님이 홀로 이 자리를 지켜주셔서...라는 취지의 인사를 내게 전했다. 내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와 부끄러웠지만, 이내 붉어진 얼굴만큼 마음도 따뜻해졌다.


저도 감사합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신 것보다 훨씬 행복한 하루였어요. 덕분입니다.라는 말을 하진 못 했다. 함께 사진도 찍고 책에 사인도 받는 시간을 마무리하고 나는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집에 오는 길에 꼭 그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라는 후회도 조금 했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온 것이 더 나았다는 생각으로 이 날을 마무리했다. 자꾸 곱씹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쉬운 마음은 이렇게 글로 남길 수도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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