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물하나, 언니 나이 스물셋에 우린 만났지.라고
며칠 전부터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거든. 언니에게 무슨 선물을 해주면 좋을까? 작년에는 뭘 보냈지? 하고 오래된 주문 내역을 뒤져보고 그랬어. 내가 고르고 골라서 보낸 립스틱을 받고 언니가 곧 오십인데 이런 귤색을 입술에 바르라는 거냐며 난리 쳐서 그건 귤색이 아니고 코랄이라며 설전을 나눴던 일이 떠올랐지. 그리고, 그즈음 내가 질질 짜면서 언니에게 연락했던 멀지 않은 작년 겨울부터 아주 멀리 저 너머에 있는 오래전 우리의 시간들까지 마치 줄줄이 비엔나처럼 따라 올라왔지 뭐야.
시작을 이렇게 해볼까? 내 나이 스물하나, 언니 나이 스물셋에 우린 만났지.라고
내 나이 스물 하나, 언니 나이 스물셋에 우린 만났지. ARI(아리)라는 스케치북을 들고 마로니에 공원 한 복판에 서 있던 무리 중에 커트머리의 언니를 나는 기억해. 내가 고백했던가? 그날 나는, 나를 테스트하러 나갔었거든. 아는 사람이 단 1명도 없는 곳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지낼 수 있는지 아니 존재할 수 있는지 나를 시험해보고 싶어서 나간 자리였어. 나름 성공이라고 생각했지만, 쭈뼛거렸던 나를 다정하게 챙겨주던 언니가 없었다면 내가 아리에 남을 수 있었을까? 거기 모인 사람들이 첫눈 내리는 날 종각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고, 지켜질 것 같지 않았던 그 약속이 지켜지던 날부터 오늘까지 25년이 흘렀더라고. 아직도 생각나 종각 파파이스 앞에서 누군가를 찾기 위해 모두 미어캣이 되었던 날을.
나의 20대와 30대를 언니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언니는 나와 닿아있어. 내 인생에서 언니가 없어지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아주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언니는 내 인생에 아주 중요한 존재였지만, 언니에게는 내가 좀 귀찮은 "애"였을 거라고 이제야 생각해. 머리를 다 했는데 지갑이 없었던 날도 난 언니에게 연락했고, 내가 긴 사랑을 끝냈을 때도 언니가 나를 데리고 종로에서 술을 마셨지. 광화문에서 언니의 말에 팩 토라져서 몇 달을 연락을 안 했던 시간도 있었고, 그리고 1년이 넘게 언니랑 연락을 안 하고 지냈던 때도 있었어. 그러다 우리 서로의 생일 선물을 들고 영등포 참치집에서 만났잖아. 그날 나는 참 좋았어. 언니를 만나서.
25년 동안 우리에겐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시간들이, 또 많은 인연들이, 그 인연들 하나하나에 다시 또 추억이, 사건이 끝도 없을 테지만 그건 이제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그저 나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그리고 지금을 사는 언니와 나야.
내 생일은 매년 달라지는데, 언니 생일은 언제나 똑같지. 꼭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변덕스러운 나랑 비슷해 그리고 언제나 늘 한결같은 언니랑도 비슷하지. 내 생일이었지만 언니 생일 선물을 뭘 하면 좋을까 생각했던 날 아침, 언니는 내 생일을 잊은 게 분명한데, 나는 언니에게 선물을 보내고 싶었거든. 근데 관두기로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또 언니가 보낸 선물을 받고 말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두 살이라도 젊은 내가 언니 늙으면 병원 같이 가 줄게, 놀아도 줄게. 됐다고 해도 그럴 거야.
언니가 스물셋이었을 때도, 서른이었을 때도, 마흔다섯이었을 때도 언니는 언제나 나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어. 그리고 언니가 오십이 되고 내가 마흔여덟이 되었을 때에도 언니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 그냥 나는 언니를 쫓아다닐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남을래. 여전히 언니는 귀찮아 죽겠네!라고 할 테지만 말이야.
언니 고마워. 이 말에 내 모든 마음을 담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