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은 저녁이 짧고, 밤이 길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바로 이불을 펴고 누워 잠을 청해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할머니는 살며시 오셔서 요강을 두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그냥 보며 웃었습니다. 영주와 나, 할머니와 요강 그리고 스테인리스 주전자와 컵이 노랑 장판에 그림처럼 놓여 있고, 제법 이 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밤은 깊어지고, 우리는 우선 처마 밑으로 나가 달을 보며 우리의 스물일곱과 스물여덟을 속삭였습니다. 그게 지겨워질 때 즈음 다시 방으로 돌아와 지난 일들로 이야기를 나누며 시골의 밤을 만끽하였습니다. 문득, 방을 휘 둘러보다 우리는 하나의 시를 발견합니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구절이 '사랑은 영원하리'였어요. 맞습니다. 분명히 사. 랑. 은. 영. 원. 하. 리. 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지은 시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낭만적이었으므로, 우리는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연신 웃었습니다. 그런데 왜 웃었을까요. 할아버지라고 사랑은 영원하다고 생각했던 청춘이 없었으려고요. 우리가 하는 사랑만 사랑인가요 어디.
아침에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는 고사리나물과 두부찌개가 얌전하게 있었습니다. 사랑꾼 할아버지는 은근히 할머니의 요리 솜씨를 자랑스러워하시며, 할머니의 두부찌개는 일품이지,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물놀이를 하러 가는 우리에게 할아버지는 마루에 걸려있던 밀짚모자 두 개를 꺼내셔서 씌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밀짚모자를 쓰고 집 근처의 냇가로 달려가 시원한 물에 뽀얀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며 어린아이처럼 실컷 놀았습니다.
우리가 웃던 시, 우리가 썼던 밀짚모자 다 그대로고 할아버지만 없어
영주의 문자에 나는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어쭙잖은 위로도 할 수가 없어서...... 할아버지의 부고에 나는 그냥 지난 사진을 들 추이며, 또 그때의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그저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사진 속 할아버지의 시,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손, 할아버지의 하얀색 티셔츠 그리고 잔디를 정리하시던 작은 손까지.
찾아온 슬픔을 멀리하자고 말하기보다, 슬픔을 함께 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곧 영주를 만나게 되면, 그냥 같이 잠깐 울어주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