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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C Feb 21. 2023

가볍게 결혼하기

그 남자 요리 탄생기 3부작

독립하고 싶었다.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형광등 밑 흰쌀밥과 락앤락통에 담긴 반찬이 아니라, 따뜻한 조명 밑 가벼운 안주와 술 한잔, 친구와 함께하고 싶었다. 유일한 사적 공간, 내방 침대 커다란 이불 위가 아니라 침실과 분리된 공간, 그럴듯한 안락의자에 가벼운 담요 덮고 책 읽고 싶었다. 웬만하면 나의 의견을 수용해 주시는 부모님은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내 주머니 사정을 아시기에 독립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돈이 문제라면, 돈이 적게 드는 독립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날부로 LH 청년임대주택을 열심히 뒤져보았다. 공급이 적고 경쟁률이 세서 독립운동의 의지가 꺾였다. 그런데 신혼부부 대상 임대주택 공급은 자주 그리고 꽤 많았다. 마침 주말 데이트로 길거리에서 쓰는 돈이 많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에 뿌리는 돈을 모아 월세를 내면 어떨까. 각자의 생활 영역(남자친구는 서울, 나는 수원)에서 평일을 보내고 와 주말에 집데이트를 하는 거다! 우리 공간이 생기고 직접 음식을 해 먹으면 훨씬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임대주택에 내게 될 월세 13만 원과 데이트 통장으로 매달 모이는 40만 원을 저울질 한 나는 결심했다. “우리 결혼할래?” 멋들어진 프러포즈도 없이 메신저로 보냈다. 1원짜리 적금은커녕 학자금 빚만 잔뜩 끼고 있던 대학원생 남자친구는 어이없게도 “그래.”라고 했다. 이게 될 줄이야. 그렇게 반쯤 얼떨결에 반쯤 용감하게, 그리고 가볍게 했다. 독립 대신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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