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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Dec 17. 2021

[한밤중 달빛 식당]상처를 수용하는 선택

(이분희/비룡소,2018)

  ‘시간이 약이다.’는 말이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나 고난을 시간이라는 힘에 맡겨 위로 삼아 보자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면 무뎌지고 잊힐 테니. 그러나 모든 것이 전처럼 돌아가기는 힘들다. 큰 슬픔과 고난은 겪은 이에게 어떤 형태로든 흔적으로 남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은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달라진다. <한밤중 달빛 식당>(이분희 글, 윤태규 그림/비룡소, 2018)은 주인공 연우를 통해 상처를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연우는 어리다. 아빠조차 큰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연우를 보살피지 못한다. 술병은 여전히 방 한구석에서 나뒹굴고 잠에서 깨어보면 빈 밥상 위에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이 달랑 놓여있을 뿐이다. 엄마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연우는 발가락 삐죽 나오는 실내화를 신고 학교생활을 한다. 엄마의 부재와 아빠의 고된 삶, 그런 환경에서 연우에게 ‘나쁜 기억’은 차고도 넘친다. 암울한 일상에 ‘나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니, 더구나 보기도 좋고 맛도 최고인 음식값으로 지불할 수 있다니. 이러한 환상적인 설정으로 <한밤중 달빛 식당>은 우리를 순식간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게 한다.      

 

  속눈썹 여우와 걸걸 여우가 운영하는 한밤중 달빛 식당. 황금빛 작은 조각들이 떠 있는 따스한 차 한 잔, 하얀 생크림 사이에 빨간 딸기가 박혀있는 조각 케이크, 초코 시럽을 가득 얹은 커스터드푸딩 등 색색깔 예쁘고 향긋한 메뉴가 가지가지다. 음식을 먹으려면 ‘나쁜 기억’으로 지불하면 된다. 잊을 수만 있다면, 잊기 위한 선택을 망설일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우는 잃었던 ‘나쁜 기억’을 돌려받는 선택을 한다. 왜 일까?


왜죠? 나쁜 기억들이 없어지면 행복해야 하잖아요? 어제 그 아저씨를 아침에 봤어요. 그런데... 그런데 너무 슬퍼 보였어요.     (48, 49쪽)  


  연우는 ‘나쁜 기억’을 지워버린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애써 지워버리고 싶은 ‘나쁜 기억’은 상처로 남는다.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시간이 약이라고 자위하면서 덮어두거나, 맞닥뜨리기 두려워 회피한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는 알게 모르게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여정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연우는 ‘나쁜 기억’을 돌려받음으로써 큰 힘을 얻었다. ‘나쁜 기억’ 속에서 죽음을 앞둔 엄마의 모습을 마주해야 하지만 연우는 달라졌다. 상처를 수용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사랑해, 기억해!”라는 엄마의 말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 연우가 살아갈 날에 큰 힘과 위로가 될 것이다.      

 

  제7회 비룡소 문학상 대상을 받은 동화지만 어른들이 읽기에도 손색이 없다. ‘나쁜 기억’ 하나쯤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기에. 작가는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나쁜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하고 말이다. 상처를 수용하는 선택의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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