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영/창비, 2019)
2020년 출산율은 역대 최초 0.8%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영향도 있겠으나 출산율 선행지표인 혼인 건수도 급격히 하락했다. 저출산 고령사회, 작금의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는 아동수당에 영아 수당까지 확대, 출산 시 비용 부담, 온종일 돌봄 서비스,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대책 마련을 포함해 '4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해럴드 경제 2020.12.15. 일 자). 연이은 지원계획에도 출산이 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자식을 낳으면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교육 문제들이 얽히고설켜 아이의 탄생과 더불어 동반되기 때문일 게다. 아이를 낳으면 아예 국가가 책임지고 키워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어떨까. <페인트(이희영/창비, 2019)>의 NC 센터처럼 말이다.
NC 센터는 Nation's Children(국가의 아이들)의 약자로 국가가 키우는 아이들이 머무는 곳이다. 영아부터 미취학 아동까지는 퍼스트 센터, 초등부터 12세까지는 세컨드 센터, 13세부터 19세까지는 라스트 센터에서 지낼 수 있다. 지역별로 센터가 있고 어떤 이유에서건 부모 되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에 아이를 보낼 수 있다. 그렇다고 NC 센터가 시설, 운영, 운영자(사람) 면에서 후졌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의 키와 몸무게를 포함한 체력관리, 멀티 워치를 통한 소통, 아이들 간 정서발달과 품성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관리·교육하는데 소홀하지 않다. 왜냐하면 역으로 부모가 되고자 하는 사람과 센터에 있는 아이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되려는(즉, 아이를 입양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비 양부모라 하여 프리 포스터라 부른다. 프리 포스터는 각종 서류심사, 건강검진, 심리검사에 결격 사유가 없어야 부모 응시를 할 수 있다. 프리 포스터의 자격과 성향을 파악하고 센터에 있는 아이들 중 가장 잘 맞는 아이에게 페인트(Parent's interview : 부모 면접)를 제안한다. 아이가 수락하면 기회가 주어지는데, 면접 후 아이가 매긴 점수로 관계를 지속할지 아닐지 판단하게 된다. 점수가 좋으면 3차 면접까지 가능하고, 결과가 좋으면 새로운 가족 구성을 이룰 수 있다. 아이는 센터를 떠나 새 이름을 갖게 된다.
이야기는 '부모 면접(페인트)'이라는 설정을 통해 부모와 아이 사이에 대한 본질적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15점짜리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와 부모는 없지만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란 NC 센터의 아이들 중 누가 더 행복할까? 가정 폭력의 그늘에서 자란 센터장 '박'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 걸까? 주인공 제누 301의 프리 포스터 하나가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받았던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가족은 '마찰'을 일으키더라도 가까이 있어야 하는 존재인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존재여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을 제누 301을 통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한다. 그 고민은 독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흔히들 자식에게 '닮았다'는 말을 한다. 닮았다는 것이 마치 사랑의 증표라도 되는 냥 어떤 점은 아빠를 닮고, 어떤 점은 엄마를 닮았음을 확인한다. 유전자의 힘을 무시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혹 당연한 말속에 숨은 이면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할 때가 있다. '내' 자식임을 강조하거나 자식이 자신에게 속해있음을 확인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만약 이 '닮음'이 잣대가 되어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거나 상처가 될 수 있다면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누 301의 말은 의미 있게 다가온다. 누구도 닮지 않은 오롯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야 할 가치를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냥 나다. 물론 나를 태어나게 한 생물학적 부모는 존재할 테지만, 내가 그를 모른다고 해서, 그들에게서 키워지지 않았다 해서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알고 있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부모가 누구인지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 아닐까?
(44~45쪽)
NC 센터에서 자란 제누 301이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돌아보는 건 눈여겨볼 만하다. 프리 포스터 하나를 통해서도 그의 독립성은 드러난다. 비단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말이다. 타인은 부모일 수도 있다.
독립이란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떠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의 말처럼 어쩌면 부모 역시 자녀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자녀가 오롯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부모에 대한 배신이 아닌 기쁨으로 여기는 것, 자녀로부터의 진정한 부모 독립 말이다. (160쪽)
부모 독립.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처럼 부모 또한 자식으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결국 부모건 아이건 오롯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제누 301은 결국 센터를 떠나지 않는다. 19세가 되어 부모를 얻지 못한 채 나갈 경우 NC 센터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만만치 않은 인생이 펼쳐지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 건 왜일까. 얼마 안 있으면 알게 될 센터장 '박'의 이름, 부모보다는 인생의 좋은 친구로 남게 될 하나와 해오름, 마음 따뜻한 고령의 부모를 만나 떠나게 될 룸메이트 동생 아키, 페인트를 통해 가족을 이루었으나 실망하고 다시 돌아온 친구 노아. 그들이 제누 301의 인생에 좋은 인연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 스스로를 믿고 아낄 줄 아는 제누 301이기에 오히려 그의 앞날이 기대된다.
인구절벽의 고령화 사회,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맞이하게 될까. <페인트>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 중 하나로 상상해 볼 수 있기에 흥미롭다.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건 부모와 아이 사이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