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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Mar 29. 2022

욕구와 표현 사이

<신글 11-7.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걸 말하기 어렵다. 

정작 원하는 걸 모르거나, 알더라도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대표적인 예는 수년 전 내가 0000 방과 후 교사 대표를 그만둘 때의 일이다. 무엇인가를 그만둘 때는 사실 한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만 둘 이유가 차고도 넘친다. 총체적 난국이다. 예를 들면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 일, 육아, 가정경제 등 무수한 이유들이 존재한다. 그때마다 이래서 힘들어, 저래서 힘들어, 힘든 이유를 백가지도 넘게 댈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이 있다. 책임감과 그동안 일구었던 노력에 대한 실패, 좌절, 나에 대한 평가, 두려움 등의 감정에 휩싸여 정작 나의 욕구는 깊은 곳에 파묻혀 버렸다. 울분과 투정을 곁에서 지켜보던 나의 반쪽이 물었다. 


"그래서, 각시가 정말 원하는 게 뭐야?"


그 한마디가 내 뒤통수를 쳤다. 나를 들여다보자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보였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나는 미련 없이, 속전속결로 그만두는 길을 택했다. 한동안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지만 후회는 없다.


그 후로 종종 자신에게 묻곤 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행여나 여러 가지 상황과 감정에 묻혀 내 욕구가 깊은 곳에 숨어버려 보이지 않을세라,  '이 타이밍에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이지?' 하고 자문하곤 한다. 그러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방향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간혹 던지는 이 질문이 좋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욕구를 파악했을 때 비로소 그에 충실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주말엔 가족들이 모인다. 서울에서 기숙사 생활하는 딸내미가 내려오고 평일 늦게까지 일하는 남편이 일찍 온다. 독서실에 출근하는 아들내미도 주말엔 잠깐 쉬어가는 타임. 덕분에 난 주말이 바쁘다. 쉬기도 해야 하는데 할 일도 많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장을 본다던가, 카톡에 뭐 먹고 싶냐 미리 묻기도 한다. 평일에 먹을 밑반찬을 챙겨놓고 주중에 해먹을 재료를 주문한다. 빨래를 돌리고 요리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왜 이걸 다 나 혼자 하고 있는 거야, 라는 생각에 미치자 나의 욕구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난 전업주부가 아니야. 우리 집은 엄연한 맛벌이라구."


그래, 누가 몰라? 그런 듯 식탁에 모인 가족들의 어리둥절한 표정. 


"그런데 엄마가 제일 일찍 퇴근하잖아."

"그래서, 뭐."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좀 더 집안일을 맡을 수밖에 없는 거 아냐?"

"그럼 난 밖에서도 일하고, 퇴근해서도 계속 일하는 셈인데?"

"......"


아들내미가 설거지를 하고, 딸내미는 기숙사 들어가기 전 청소를 해 놓고 퇴장. 남편은 빨래를 갠다.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이지 않으려면 그때그때 원하는 걸 말해야 한다. 돌려 말하지 말고 솔직 간단명료하게. 평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살피고 정확히 표현할 줄 아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이다. 


지금은 쉽게, 글을 잘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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