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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Mar 18. 2022

지구 들어 올리기

<신글 11-3. 내가 경험해보고 싶은 것>

수년 전 일이다.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강당 같은 곳에 두툼한 방석이 군데군데 깔려 있었다. 커튼을 닫아 안은 어두웠고, 그 어두운 공간을 노란빛을 내는 은은한 조명이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밝히고 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왼쪽 어디쯤인가 방석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그녀가 들어왔다. 분홍색 빛의 도복 같은 생활한복을 입은 그녀는 눈에 띄었다. 머리카락이 온통 새하얬기 때문이다. 키는 작고 체구는 아담했다. 가만있어도 웃는 듯한 표정의 얼굴은 주름이 무늬처럼 새겨져 있었으나 인자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강사와 마주 보는 자리, 즉 맨 앞줄 가운데 방석에 조용히 앉았다. 나는 대각선 방향에서 그녀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요가 동작이 진행될수록 그녀의 유연함은 쉽게 돋보였다. 한 두해 수련한 솜씨가 아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완전 초짜였다. 여러 가지 동작을 하다 막바지에 이를 때쯤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마를 방석에 내려놓는다. 두 손을 맞잡고 양 팔꿈치로 삼각형을 만들어 머리를 받힌다. 이마를 세워 정수리 부분이 바닥에 닿게 한다. 엉덩이를 천천히 들어 등을 곧게 세운 후 다리까지 천천히 들어 올린다. 물구나무서기다. 난 하지 못했다. 엉덩이를 들어 올린 채 양팔과 발끝으로 체중을 버텨내고 있을 뿐. 자세를 정리하고 보니 그녀는 꽤 오랜 시간을 정자세로 물구나무를 서고 있었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꼿꼿하게.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그 후로 '물구나무 설 줄 아는 할머니'가 내 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랑 담을 쌓은 채 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었고, 먹고사는 문제와 나의 인생, 육아와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뿐인데. 나는 다시 요가를 한다. 집에서 매트를 깔고 혼자 하는 요가지만 홈트가 가능한 이 시대에 감사해하며. 


"그렇게 해서 물구나무설 수 있겠어?"


불성실한 나의 태도에 가끔 딸내미로부터 잔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언젠가 이룰 수 있겠지. 내가 지구를 들어 올리는 순간, 바로 물구나무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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