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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May 26. 2022

꿀과 봉구

학교 텃밭이 학교 안에 있지 않다. 오래전 누군가 학생들 교육 활동하라고 기증한 땅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사실 아이들이 텃밭 활동하기에는 다소 큰 감이 있다. 게다가 교문 밖에 있으니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자주 데리고 나가기 어렵다. 밭을 일구고 심고 풀 뽑고 호박, 고추, 오이, 상추, 방울토마토 등 수확을 하기까지는 주무관님의 노고가 90% 이상 들어간다. 일손이 바쁠 때면 나는 짬을 내어 텃밭을 들여다보고 풀을 뽑거나 상추를 뜯는 둥 하면서 가끔 주무관님을 돕기도 한다. 


넓고 기다란 학교 텃밭 오른쪽 두둑 위쪽으로 집 한 채가 있다. 작은 체구에 나이 좀 드시고 웃상인 아저씨가 혼자 사는 집이다. 학교 텃밭을 가려면 꼭 그 집 앞을 지나쳐야 하는데 집 마당 너머 안쪽을 흘깃 보거나 텃밭에서 위쪽을 올려다보면  닭, 소, 꿩, 토끼, 소도 키우고 양봉까지 하신다는 걸 알 수 있다. 언젠가는 까만 염소 가족들도 보았는데 요즘 보이지 않는다. 또 언젠가는 그집 토끼가 탈출해 학교 텃밭의 고구마순을 톡톡 따 먹는 바람에 단속에 들어간 적도 있다. 


넓고 긴 학교 텃밭과 오른쪽 위로 양봉 시설을 볼 수 있다.


어제 점심시간, 텃밭에서 흘린 땀을 식히며 주무관님이 꿀 한 병을 보여주신다. 


주무관 : 이 집(텃밭 옆 아저씨네) 꿀 품질은 제가 보장해요. 내가 양봉해 봐서 아는데, 절대 설탕물 같은 건 (벌한테) 먹이지 않더라구. 

나 : 그래요?.... 저도 그럼 꿀 한 병 얻을 수 있을까요?

주무관 : 빨리 말하지 않으면 얻기 힘들 텐데.. 어디 갔다 파는 게 아니니까 아는 사람들만 주문해서 금방 없어지더라구요.


퇴근하시는 주무관님을 따라 교문 밖 양봉 아저씨네 들렀다. 커다란 백구 닮은 개가 컹컹 짖더니 이내 주인아저씨랑 대화를 나누자 금방 조용해진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새끼 한 마리가 어미 뒤편으로 돌아가 앉는다. 어미와 똑같은 자세다. 축소판이다. 생긴 건 전혀 딴판이다. 어미는 새하얀데 새끼는 짙은 고동색 바탕에 검정 줄무늬가 있다. 마치 범상이다. 


나 : 어머, 새끼가 어미랑 똑같이 앉아 있네요. 생긴 건 하나도 안 닮았구만.

아저씨 : ㅎㅎ 네, 봉사예요.

나 : 네?

아저씨 : 앞을 못 봐요. 태어날 때부터 눈알이 없더라구요.


자세히 보니 눈을 감은 것처럼 보이기만 할 뿐, 아저씨 말대로 보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 형제들은 건강해 다 분양되어 나가고 장님인 새끼는 어미 곁에 혼자 남았단다. 아저씨 목소리를 듣고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해맑게 흔들리는 꼬리. 


나 : 이름이 뭐예요?

아저씨 : 이름 없어요.

나 : 네? 이름이 있어야 부르기도 편하시고 쟤도 알아듣지 않을까요?

아저씨 : 그럼, 이름 하나 지어주세요.

나 : (급 당황) 네? 제가요? 음.... 암컷인가요, 수컷인가요?

아저씨 : 수컷이에요.

나 : 으으.... 봉구요... 봉구!


아저씨가 흐뭇한 표정으로 새끼 개를 향해 말한다.


"너, 오늘부터 봉구다. 봉구~"


그 봉구가 오늘은 어미 곁을 벗어나 집 주위를 크게 한 바튀 돌았단다.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소리와 냄새로 찾는 것 같다고.  마트 가면 커다란 개껌 하나 사다 줘야겠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키우고 있는 봉구 어미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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