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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Apr 01. 2022

그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

<이수지 작가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을 축하하며>

'어린이 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우리나라 이수지 작가가 받았다. 세계로 뻗어간 K팝 못지않게 자랑스러운 일이다. <파도야 놀자>, <거울 속으로>, <여름이 온다> 등 그녀의 작품을 다시 보았다. 그림으로 말하는 작품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경계 없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몇 년 전 그녀가 한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15분)에서의 강의는 인상적이다. 주제는 '아이에게 책을 주고 싶은 진짜 이유'다. 


독서교육에 대한 관심은 높다. 아이들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며, 이는 '어릴 때부터 책을 읽혀야 한다'로 이어진다. 며칠 전 교내에서 마주친 한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우리 00이 도서실에서 책은 잘 빌리나요?"


이 질문 역시 빌리는 것 자체가 궁금할 수도 있겠으나, 내 아이가 책과 얼마나 가까운지, 흥미는 있는 건지 궁금한 마음의 표현이었을게다. 이면에는 책을 잘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도서실 운영을 하면서 '책 읽어주는 엄마', 학부모 봉사, 학부모 독서 동아리 등을 운영한 바 있다. '꿈을 키우는 독서지도'라는 주제로 학부모 연수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독서교육에 관심 있는 많은 어머니들을 만났다. 학교에 들어갔으니 책은 스스로 읽기를 바라는 어머니, 그림책에서 글이 많은 단계로 넘어가기 힘들어한다는 아이를 둔 어머니, 고학년인데 책을 안 봐요, 만화책을 읽혀야 할까요 등. 나 또한 아이를 키우는, 독서교육에 관심이 많은 한 엄마로서 그들과 함께 독서교육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책을 왜 읽히는가.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한 답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독서교육에 대한 부작용 - 예를 들면 '책 읽으라'는 잔소리 때문에 오히려 책과 멀어진다던가, 독서에 대한 부모의 집착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던가 - 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관심을 갖는 만큼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면 좋으련만 오히려 책과 멀어지는 역효과를 낳는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책을 잘 읽던 3학년 친구가 몇 주 전부터 계속 만화책만 찾아 읽는 모습을 보았다. 독서 취향이나 태도가 바뀌었길래 왜 그럴까 궁금하던 차에 그 아이 어머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집에서 요즘 책 보기 싫어한다며 걱정을 하고 계시는 거다. 매주 공공 도서관에서 아이가 읽을 만한 좋은 책을 가족 이름으로 몇십 권씩 대출해 읽히는 어머니였다. 


"집에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매일 읽어야 해요."


그렇게 말하는 3학년 친구의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책 읽기가 즐겁지 않음을, 마치 또 하나의 숙제처럼 해결해야 할 짐처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학년이 오를수록 읽어야 할 양은 많아지고 부모의 마음은 급해진다. 습관이 무르익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데, 마음이 급해지니 기다리기가 쉽지 않다. 정작 고학년이 되었을 때 책을 즐겁게 읽는 친구들은 드물다.


책을 잘 읽는 아이들은 아는 것이 많다. 구사하는 어휘력이 남다르다. 이해력과 사고력이 받쳐주니 시험을 잘 본다. 나름 학교 생활도 잘한다. 그런데 이것은 꾸준한 독서가 낳은 결과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즉 사고력, 창의력 등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책을 읽히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얘기다. 실례로 이렇게 방향을 잡다 보면 '책은 꼭 읽혀야 하는 것'이 되고, 결국 아이들에게 강압적인 분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커진다. 해서 독서가 교육이 되는 순간 책 읽기는 아이들에게서 매력을 잃는다고 했던가. 


이수지 작가는 독서가 '가장 자유로운 자세로, 가장 자유로운 마음으로 유영하며 보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자유로운 상상의 놀이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 독서교육의 최종 목표는 그야말로 '그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면 된다.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무심코 만난 한 권의 책에서 "아!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다니!" 깨닫는 순간, 아이가 다음 책을 찾아 나설 확률은 높다. 재미있으면 또 놀고 싶듯 즐거운 경험을 추구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어느 순간 책을 보며 낄낄 거리는 아이를 보면 무슨 책을 보나 궁금해진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아이의 관심사나 독서취향도 알 수 있다. 나아가 소통도 가능하다. 그것이면 절반의 성공, 아니 큰 성공이다. 독서에 대한 즐거운 경험이 모여 아이들의 삶이 풍성해지기를,  내면의 성장을 도모하기를, 그것이 이루어졌다면 감사할 일이다. 


학습이 아닌 즐거움과 놀라움으로 이어지는 흥미진진한 독서라면 아이가 살아갈 인생에 꽤 괜찮은, 든든한 친구 하나 만들어 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겠다. 힘들 때나 궁금할 때면 언제나 찾아볼 수 있는 좋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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