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크리스천 맥케이 하이디커/밝은미래)
"선생님, 무서운 책 추천해주세요~."
도서실을 찾은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다. 저학년 친구들은 <여우누이>나 <밥 안 먹는 색시>, <땅속 나라 도둑 괴물> 같은 옛이야기를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해가며 읽어주어도 효과 만점이지만, 중학년 이상의 경우는 다르다. 마치 무서운 영화를 볼 때처럼 심장 쫄깃한 공포심 정도는 맛보아야 할 텐데, 그런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셜록 홈스>나 <스무고개 탐정> 같은 추리물로 대체하기도 한다.
공포심을 맛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예상치 못한 극한의 상황에 처할 때 오는 불안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벗어나는 과정, 무사히 그 여정을 끝냈을 때 찾아오는 안도감. 그런 것을 맛보고 싶은 것은 아닌지. 진즉부터 이런 아이들의 심리를 알아채서인지 제목부터 아예 <귀신 선생님과 진짜 아이들>처럼 귀신이 등장하거나 <좀비 펫>처럼 좀비가 등장하는 류의 책은 아이들의 시선을 쉽게 끈다. 그에 반해 액면 그대로 정직하게 표현한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는 제목만으로 그다지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는가 보다. 반응이 시큰둥하다. 언뜻 보아 두께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나의 권유는 꽤나 적극적인 편이다.
이야기는 액자식 구성이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다. 일곱 마리 새끼 여우가 여느 아이들처럼 자기 전 엄마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듯 어린 여우들도 그렇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 더 이상 유치해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 말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 말이다. 들려줄 이야기가 바닥난 엄마는 실망시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한마디 당부한다. 아무리 그래도 늙은 이야기꾼이 사는 습지 동굴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그런데 아이들은 어떠한가.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고, 가지 말라는 곳에는 더 가고 싶어지는 게 아이들이다. 일곱 마리 새끼 여우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소름 끼치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려 습지 동굴로 향한다.
"모든 무서운 이야기는 두 가지 면을 갖고 있다." 이야기꾼이 말했다.
"달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처럼 말이지.
너희가 끝까지 들을 만큼 용감하고 슬기롭다면, 그 이야기는 세상의 좋은 모습을 밝혀줄 거야.
너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고, 너희가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주겠지." (중략)
"하지만 말이야." 이야기꾼의 말이 이어졌다.
"너희가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무서워서 끝까지 듣지 않고 꽁무니를 뺀다면,
이야기의 어둠이 모든 희망을 집어삼킬 수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너희는 두 번 다시 굴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야.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영원히 젖내를 풍기며 삶을 허비하게 되겠지." (12~13쪽)
가루가 쏟아지는 것 같은 목소리로 늙은 이야기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새끼 여우는 하나씩 집으로 돌아가고 만다. 누가 끝까지 늙은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가. 이야기가 전개될 때마다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믿었던 이의 부재, 또는 그들로부터의 버림받음. 그것만큼 무서운 상황이 또 있을까. 부모 형제를 모두 잃은 미아와 다리가 세 개 밖에 없는 율리가 그렇다. 학교에서 믿었던 암여우 스승 빅스가 미쳐 날뛰는 바람에 형제자매를 순식간에 잃은 미아, 장애를 갖고 태어나 아빠 '발톱 마왕'으로부터 목숨을 지켜야 하는 율리. 그들은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의지했던 이로부터 버림받았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그들이 각자 다른 이유로 집을 떠나게 되자 그들 앞에 펼쳐진 숲은 예측할 수 없는 밀림이다. 미지의 세상이다. 온갖 위험과 속임수, 함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고난은 그렇게 아주 가까운 곳에서, 예고 없이 찾아온다.
상상보다는 현실을, 꿈보다는 안정을 취하는 게 익숙해진 어른이 된 지금 무서운 이야기가 있을까 싶지만, 읽다 보면 그렇지 않다. 심장 쫄린다. 그들의 모험 이야기는 긴박하고 숨 막히게 펼쳐진다. 궁금해서 다음 장을 펼쳐보게 된다. 지혜로운 암여우 빅스 선생이 갑자기 변한 이유는 뭘까. 인간에게 잡혀 박제 신세를 코앞에 둔 미아는 탈출할 수 있을까. 세 다리밖에 없는 어린 율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어린 여우들 중 누가 남게 될까. 분량이 많아 가졌던 부담스러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끝이 궁금해 책을 놓을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들려줄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무엇일까. 아마도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란다"는 말을 들려주어야 하는, 현실의 이야기는 아닌지.
"율리, 내 아들아. 네 삶은 모든 것이 두 배로 힘들 거란다. 하지만 동시에 두 배로 멋질 거야.
네가 힘겹게 딸기를 따 먹으면 그 맛은 두 배 더 달콤할 거야......" (63쪽)
엄마는 말했다.
"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두려움을 이겨 내고 꼭 필요한 일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구했다고 생각해." (329쪽)
추억처럼 떠오르는 엄마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맞닥뜨린 고난에 꽁무니 빼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어둠이 모든 희망을 집어삼키게 내버려 두지 않는 지혜로움을 배울 수 있다. 더불어 늙은 이야기꾼의 정체를 발견하는 신박한 즐거움도 맛보시길.
인생은 고난의 연속임을 일깨우지만 그것에만 머무르지 않는 책,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