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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Aug 14. 2023

행운을 잡으려면

<독서정담 다섯 번째 :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독서정담을 나누는 그녀와 서울의 **문고에서 만났다. 방학이라 현장수서(직접 서점이나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등을 방문하여 신간자료를 조사하는 행위) 일정에 맞추어 책 이야기도 나눌 겸 해서다. 늦은 점심 식사 후 인근 카페를 찾았다.    


"선생님, 이 책은 화자(말하는 이)가 좀 특이한 책이에요. '행운'이 이야기를 들려주거든요~."

책을 추천했을 때 전했던 그녀의 말이다. '행운'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처음에는 낯설다가 곧 시나브로 빠져들게 되는 책이다. 오랜만에 스스로 매긴 평점에 별 다섯 개를 주었다.  이꽃님 작가의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문학동네, 2020)>이다.

 


이 책은 열다섯 살 중3 아이들의 이야기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은재가 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형수와 우영이 있다. 선뜻 나서지 못하고 엉거주춤 있는 순박한 아이들의 모습에 더 정감이 가게 된다. 반면 똑 부러지는 반장 지유, 현실적으로 이런 친구가 있을까 싶지만 내심 지유 같은 아이가 있기를 바라본다. 이들을 '운' 또는 '타이밍', 또는 '행운의 여신'이라 불리는 '행운'이 바라보며 들려주는 이야기다. 




나의 자유논제. 


은재가 빈집털이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형수와 우영은 아빠에게 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보고도 모른 척 물러나야 했던 자신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는데요, 이 책의 화자인 ‘행운’은 형수와 우영의 그런 모습에 호기심이 생깁니다. “일곱 살에서 열다섯이 되는 동안 수많은 불합리와 잘못된 세상을 만”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여러분은 화자의 이런 생각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놀랍게도 두 녀석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중이다. 나는 그런 녀석들이 고마우면서 동시에 궁금해진다. 이렇게 말하면 매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은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게 녀석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열다섯 살이 되는 동안 녀석들이 배운 거라고는 비겁해지는 방법, 불의를 보고 눈 감는 방법,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방법 같은 것들뿐이지 않은가.(중략)
일곱 살에서 열다섯이 되는 동안 아이들은 수많은 불합리와 잘못된 세상을 만난다. 잘 나가는 친구에게 붙으려고 양심을 팔기도 하고, 내가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다른 아이들 왕따 시키고 못 본 척하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배우게 된다. 용기를 가지는 건 어렵지만 비겁해지는 건 쉽다.(23~24쪽)


안타까운 현실이 느껴져 위 논제를 뽑았다. 어린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던지는 질문을 대할 때면 세상에 대한 온갖 호기심과 관심이 느껴지곤 했다. 곤충과 식물, 자연과 사람, 건물, 날씨 등 자기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다. 그런데 학년이 높아질수록 질문은 줄어들고 표정은 어두워진다. 화자의 말처럼 '수많은 불합리와 잘못된 세상'을 만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건 어른의 책임이라는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형수와 우영에게 '행운'은 다가서고 있다. 


모른 척하라는 은재에게 형수는 말한다.


"나는 무서워 죽겠어. 네가 또 아빠한테 맞을까 봐 무섭고, 내일 학교에 못 나올까 봐 무섭고, 그걸 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나도 무서워."(44쪽)

청소년들이 이 대목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나의 선택논제.


아빠의 폭력에 시달리는 은재와 엄마의 날카롭고 거친 언어폭력에 시달렸던 우영은 결국 어른들에 의해서가 아닌 또래 친구들에 의해서 희망을 발견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은재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던 형수와 우영, 반장 지유, 축구부 지영 등이 있었고 우영에겐 우영 자체를 인정해 주고 좋아해 주는 반장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책의 화자인 ‘행운’은 이런 모습에 대해 “불공평한 인생에 손을 내밀어 주는 건 언제나 다시 인간들”이라고 하는데요, 여러분은 이런 생각에 공감하시나요?

-공감한다/공감하지 않는다

만약 우영이 반장을 만나지 못했다면, 갑작스레 고백을 하지 않았다면, 우영은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알지 못했을 거다.(156쪽) 
인생이 당신을 구해 줄 거라고? 개소리 말라지.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구해야만 한다.(중략)
인생은 불공평하지만, 불공평한 인생에 손을 내밀어 주는 건 언제나 다시 인간들이다.(181~182쪽)


그녀나 나나 '공감한다'는 의견.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얻은 깨달음 같은 것이랄까. 인간은 서로에게 기대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다. 그녀는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이미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며 한마디 덧붙였다.

"저에게도 선생님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잖아요. 이렇게 책 읽고 같이 이야기 나누자는~"

 위 질문 역시 아이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은 내용이다. 




그녀의 자유논제.


이 책의 화자인 '행운'은 각기 다른 이유로 우영과 형수 그리고 은재 곁에 머뭅니다. 엄마의 언어폭력 때문에 힘들어하는 우영과 아버지의 학대로 고통받는 은재가 언제든 '나'를 부르지 않을까 싶어서 그들의 주변을 서성입니다. 그들이 '나'를 찾을 때 바로 나설 수 있도록 말이지요.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볼 때, 여러분 주변에서 서성이던 행운이 내민 손을 잡은 적은 언제였나요?


나는 조용히 은재의 곁으로 가 우두커니 선다. 은재가 나를 부르지 않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이 아이는 내가 건네는 손을 그러잡을 힘조차 없다. 뭔가를 하기에 은재는 너무 지쳐 있다.(25쪽)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영의 곁을 맴돌고 있다. 우영의 엄마가 우영에게 소리를 지를 때, 섬뜩하리만큼 차갑게 대할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우영의 옆에 서서 녀석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언제고 녀석이 나를 찾을 때 나설 수 있도록.(38쪽)


인생의 정체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화자의 말처럼 어떤 때는 역겹다가도 어떤 때는 나름 법칙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인생을  '행운'은 곁에서 지켜본다. 하지만 그 행운을 누구나 다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화자의 말대로라면 힘이 있어야 한다는 거. 자신의 인생을 구해내고자 하는 최소한의 힘. 그거라도 있어야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나에게 행운은 남편을 만난 일이다. 정말 정말 힘든 때 그를 만났으니 말이다. 남편을 만난 것도 지금의 아이들을 만난 것도 내 인생에 커다란 행운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행운 때문에 힘들기도 하다. 역시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선택논제.


이 책에는 주로 네 명의 청소년이 등장합니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주눅 들어 있는 우영, 공부도 못하는 찌질이지만 '상처받은 이를 모른 척하지 않는' 형수, 당차고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하며 불의를 그냥 넘기지 않는 지유,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거라 여기며 자포자기하던 은재. 여러분은 이 네 명 중 누구에게 가장 공감(관심)이 가는지 이유와 함께 이야기해 보세요.


자신을 부르는 큰 소리에 우영은 실험실에 갇힌 가여운 동물처럼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떤다. 누군가 자신을 큰 소리로 부를 때면 늘 깜짝 놀라는 우영이다. 엄마가 우영을 혼낼 때마다 그렇게 불러서이지만 우영은 자신이 소심해서 그런 줄만 안다.(50쪽)
"그래, 나 공부도 못하고 쪽팔린 것도 모르는 찌질이다. 그래도 난, 무서운 게 뭔지는 알아."(중략)
"나는 무서워 죽겠어. 네가 또 아빠한테 맞을까 봐 무섭고, 내일 학교에  못 나올까 봐 무섭고, 그걸 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나도 무서워."(44쪽)
"근데 난 그 꼴 절대 못 보거든, 누가 내 인생에 태클을 걸면 물어뜯어서라도 못 하게 막아. 미친년이라 부르든 타노스라 부르든 상관없어. 몇 번만 그렇게 하면 아무도 안 건드려."(160쪽)


둘 다 형수를 꼽았다. 우영과 은재처럼 상처투성이인 삶도, 당차고 똑 부러진 지유의 삶과도 좀 거리가 있다. 상처도 조금씩 있으면서 양심은 저버리지 않는, 평범한 듯하면서 보통인(?) 삶. 형수가 크면 우리와 닮아있을까. 아니, 그는 가능성이 많기에 더, 꽤나 괜찮은 어른이 될지도 모르겠다. 




<행운이 다가오는 중>은 가정폭력, 교육환경, 언어폭력, 친구관계 등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가 많은 책이다. 현실의 어두운 문제를 다루고 있어 작품의 분위기가 칙칙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형수와 우영의 청소년다운(?) 익살스러운 장면에 절로 웃음 짓게 되기 때문이다. 무척 재미있게 읽어 같은 작가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이꽃님/문학동네, 2018)>를 찾아 읽었다. 이 작품은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시간에 대한 작가의 반짝이는 설정이 돋보이는 책이다.


  


관심을 가질 것.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정말 이 간단한 일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자기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형수와 우영에게서처럼 따뜻한 마음을 갖는 모든 이에게 행운이 다가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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