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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Oct 02. 2021

<당선,합격,계급>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 보면 비극

당선, 합격, 그리고 브런치북 프로젝트

Dr.남산(https://brunch.co.kr/@namsan#works) 작가님은 주로 브런치 공모전에 관한 글들을 자주 올리신다. 그는 심지어 최근 글 소제목에서 자신의 브런치를 '좌절 맛집'으로 불렀다. 실제로 브런치에서는 대표 공모전인 <브런치북 프로젝트> 외에 다양한 기업, 기관들과 함께 여러 공모전을 개최해왔다. 브런치작가들만이 경쟁하는 공모전이라는 이유에서 그 합격률이 꽤 높지는 않을까 으레 기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려 몇천 개나 되는 작품들이 응모된다고 하니 나 역시 좌절 맛집 대열에 합류한 것도 이상할 리 만무했다. 당선작이 곧 저작권 귀속이나 다름없었던 당선 조건으로 작가들의 공분을 샀던 <제13회 공유저작물 창작 공모전>에서도 최근 낙방했다. 매번 개최되는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낙선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꽤나 속이 쓰렸다. 나름대로 공모전의 취지를 분석하여 읽기 쉽게 쓴 응모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고, 내가 보기에도 이번에는 꽤 경쟁력 있다며 스스로 자신한 것이다. 이쯤 되고 보니 브런치의 공모전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 아니 애초에 '공모전'이라는 제도 자체에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나는 왜 떨어지는 것이며, 그럼에도 왜 매번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브런치의 공모전에 도전하는 것일까. 이게 비단 브런치 안에서 만의 문제일까?


장강명작가의 <당선, 합격, 계급>은 무려 4번이나 공모전에서 수상한 기자 출신 작가가 쓴 르포르타주이다. 그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번도 되기 힘든 공모전을 무려 여러 번 수상한 그 가질 수 있는 합당한 의문이었다. 더불어 그는 이 책을 작가지망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동시에, 한국사회에 제언을 하고 싶다며 밝혔다. 작가지망생이기도 하면서 한국사회에 꽤 많은 불신이 있고, 전문대 출신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내가 읽고 싶기에 아주 적합한 책이었다. 심지어 나는 앞서 밝혔던 대로 공모전에 여러 번 낙선하면서 공채제도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 역시 그런 공채제도에 합격한 직장인임과 동시에 브런치 심사에 통과한 사람 중 한 명이자 유명 대학 두 군데에서 단편소설 공모전에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마치 문학상을 수상했으면서도 문학상에 대해 의문을 갖는 작가 장강명처럼.


<당선, 합격, 계급>은 서문에서부터 독자층을 구분하여, 그 독자층에게 맞는 목차를 미리 알려주는 친절한 르포이다. 기자 출신인 그답게 그의 문장은 건조하면서 꽤 관조적인 시선으로 글을 쓴 듯 보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에 대한 작가의 열정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공모전과 한국의 공채시스템을 번갈아 비교해가며 두 제도의 공통점에 대해 말한다. 우선 두 제도에 대하여 공통점을 설파하고 이 제도들에 대한 문제점을 찾는 방식인데 독자 입장으로서는 마치 영화의 잘 만들어진 장면 전환과도 같았다. 두 제도가 엄연히 같다고 보는 작가의 입장에는 나도 심히 동감하는 바이며, 그의 주장 대부분은 읽는 내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는 공모전에 깊은 연관이 있는 다수의 관계자들을 만나 각자의 입장에서 의견을 들으며 작가지망생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부분들을 대신 보여주다. 작가지망생의 입장으로서는 이보다 더욱 반갑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작가지망생이 아니라면 그들의 인터뷰로 인해 이 책에 대한 공신력이 생기는 느낌을 받을 것 같았다. 이 책을 다 읽자 마치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다큐멘터리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선, 합격, 계급>은 매우 흡입력 있게 읽히면서도, 동시에 이 책이 다루는 현실로 인하여 감정소모가 있는 책이었다. 관조적이며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으려 하는 작가의 노력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책이 다루는 제도권에 관한 이야기가 읽는 내내 나의 에너지를 쏟게 했다. 이것은 분명 이 책의 잘못 아니었다. <당선, 합격, 계급>은 르포르타주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여도 막힘없이 읽힐 정도의 흡입력과 문장력을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으로 인하여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은 내가 이 책이 다루는 제도 아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한 개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을 보고 나면 으레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장강명작가는 이 책의 말미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공채제도의 개선점을 분명히 밝혀두었다. 나도 그 제언이 이 제도권 안에서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더불어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이자, 사서로서 이 책이 토익점수가 낮은 영어교사들을 사서교사, 상담교사와 전직하면 되지 않느냐는 문장에서는 사실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기자 출신인 작가가 르포르타주를 쓰면서 따져보았을 수많은 사실 가운데에 그는 이 점에 대하여 검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이 사회가 사서와 상담사의 전문성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되려 그 문장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점은 교사라는 집단에서 교과와 비교과의 보이지 않는 계급을 의미했다. 이 책에서 인용한 문과들의 직업 순위에 나의 직업인 교직원은 상위권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사실 말하자면 나는 교직원의 계층 가운데에 밑바닥에 놓여있는 처지이다. 또한 누군가는 사서라는 나의 직업이 사회적으로는 괜찮은 직업이라며 말했으나 사서가 한 기관 안에 소수로 배치된 많은 경우에 성과를 인정받기 힘들다. '일이 있어 보인다'는 주장과 '일이 쉬워 보인다'는 주장 사이에서 언제나 전문성은 생채기가 난다. 부디 이 책을 읽는 많은 분들이 이 책에서 그 문장만큼은 잘못된 것임을 알았으면 한다.


어떻게 보면 이 자체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공채제도를 탐구하는 르포르타주에서 자격미달인 영어교사의 대체제로 언급된 그 사서교사와 상담교사에 오늘도 많은 이들이 합격을 바라며 고시에 도전한다. 이 아이러니가 실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공채제도에 상처 입은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작가는 공모전의 심사위원들은 '취향 공동체'이며 이들이 명확한 기준은 아니라 말했다. 이는 모든 취업준비생들을 힘들게 하는 기업의 공채제도와도 비슷할 것이다. 더불어 주류 집단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앞서 말한 아이러니는 언제나 발생한다. 또한 한 번의 시험으로 인재가 선출되는 방식에서도 문제점과 허술함이 있음을 말했다. 공채제도에는 분명 명확한 장단점이 있으나 이에 영영 해당되지 않더라도 그 존재 자체가 부적합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소설이던 사람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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