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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Oct 21. 2021

<사서의 일> 현직 사서가 읽어본 사서의 일에 대해

책과는 멀어지기 싫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문헌정보학과로 진로를 틀었다. 작가에서 사서로 희망직종이 변경된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때 나의 결정이 대견스럽다. 그렇게 남들보다 이르게 졸업한 후 2012년도부터 학교도서관을 시작으로 교육지원청, 공공도서관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공채 학교도서관 사서로 경기도 한 지역에 첫 발령을 받았다. 그간의 떠돌이 세월을 보상받는 같기도 하였고, 이 직업으로 정년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더불어 내가 생각한 평범한 삶의 궤도 안에 진입했다는 묘한 위안이 들었다는 것을 차마 부정하지는 않겠다.


'사서'라는 직업에 대하여 떠올려보면 나의 일부이자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직업이 미치도록 싫었던 이유 역시 한국에서의 대우와 처우가 싫었을 뿐이지 애초에 직업 자체에 대한 미움은 아니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증오보다는 원망에 가까웠다.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제일 먼저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라고 소개하는 내가 좋았고 실은 그 멋에 취하기도 하였다. 책을 다루는 전문인이라는 표현은 낮은 처우와 대우로 인해 원망으로 돌아오기도 하였지만, 나를 직업적으로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브런치작가로 선정이 된 후 필명에다가도 자랑스럽게 내가 사서임을 밝혀두었다. 사실 내가 그러한 필명을 가져도 될 정도로 사서로서 열정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가에 대해 종종 의문이 찾아왔고,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때가 오기도 하였다. 세상엔 열심히 일하는 사서들이 정말 많았고, 나도 그 부류에 합류해도 되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이 찾아왔다.


사실 나로서는 사서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몹시 낯설다. 앞서 말한 이유처럼 나와 그들을 비교하게 되거니와 사서에 관한 책을 읽는 곳이 곧 업무의 연장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삶을 조금 더 열심히 살기 위함이었다. 나 스스로 열정을 불러일으킬만한 동기부여가 되기를 바랐고, 같은 직종의 사람이 말하는 도서관 업무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직장 내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미는 일이 생겼을 경우엔 이 책마저 싫어 멀어졌지만 같은 이유로 이내 책을 집어 들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도서관인이었다.


같은 사서가 이 책을 읽는다면 나와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으레 이 것은 사서뿐만이 아닌 같은 직종에서 뛰어난 누군가를 만났을 때에 드는 생각과 같을 것이다. 열정에 대한 질투, 나의 직업생활을 돌아보게 만드는 지난 경력들, 사서로서의 나의 위치, 그리고 같은 업을 하는 이와의 동질감까지. 사서라면 해보았을 사소한 실수들에는 퍽 공감이 가면서 그것을 성찰해내는 한 개인에 대하여는 꽤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 거리감은 직장인으로서의 온도 차이일 수 있겠으나, 현상과 사물에 대해 애정을 갖는 한 사람에 관한 따뜻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서가 아닌 이들이 읽었을 경우라면 이 책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사서의 업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표현한 것은 이 책은 업무를 통한 한 개인의 성찰이 담긴 에세이이기 때문에 사생활과 공적 업무가 철저히 분리되어 읽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말하였듯 나 역시 사서라는 직업이 나의 정체성 중 일부가 되어버린 것처럼, 어느 한 직업을 깊이 좋아하는 이라면 철저히 자신과 일을 분리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도서관 역시 누군가 들여다본다면 열정이 부족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사실 벌이는 행사의 규모는, 학교도서관 저널에서 소개되는 훌륭한 사례 앞에서는 다소 내놓기 민망한 수준처럼 보인다. 종종 같은 업에 종사하고 있는 대학 동기 S와 나는 우리는 우리의 직업을 '좋아한다'라고 표현한다.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는 그만큼 이 일에 쏟고 있는 업무적인 성과에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애정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우리는 이 직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서가 '도서관에 책 빌려주는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로써, 이렇게 사서가 한 명의 어엿한 직업인으로 등장한 책이 몹시 반갑고 귀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우리가 카운터 안에 앉은 이들이 아닌, 도서관 한가운데 서있는 사람이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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