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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Oct 29. 2021

<책 한번 써봅시다> 읽고 쓰는 나라의 주민들에게 고함

일전에 장강명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를 읽고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적당히 건조하고 적당히 염세적인 작가의 시선이 마음에 들어 작가의 르포르타주인 <당선, 합격, 계급>을 읽어보았다. 그 책에서 장강명작가가 사서교사 및 상담교사가 타 교과의 능력 미달인 교사의 대체제로 언급한 것에 사서로서 몹시 마음이 상했지만, 어찌 되었던 그는 타고난 글쟁이였다. 앞서 이야기할 <책 한번 써봅시다>를 기여코 손에 쥐게 만드는 것을 보면.


작가는 이미 전작인 <책, 이게 뭐라고>를 통하여 읽고 쓰는 공동체에 대하여 이야기 한 바 있다. 표지에 그려진 귀여운 일러스트 덕에 그 책은 읽기도 전부터 마음 편히 읽힐 것이다 라는 오해를 샀는데, 실제로 책을 읽어보니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작가는 <책, 이게 뭐라고>를 통하여 읽고 쓰는 공동체의 필요성과 '책'자체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꽤 설파하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그의 신작인 <책 한번 써봅시다>에 대해 으레 드는 생각이 괜한 오해는 아닌 것이다. 장강명 작가는 기자 출신임이 명백히 드러나는 작가이며, 동시에 그는 굳이 따지자면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을 믿는 사람으로 보였으니까. 게다가 이번에도 역시 표지는 따뜻한 감성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책의 온도를 나름 중화해보려는 출판사의 의도는 아닐까 싶었다.


작가를 예술인이라기보다는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보는 시선은 이미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통하여 느껴본 바 있다. 장강명작가의 신작 <책 한번 써봅시다>는 그러한 시선을 지닌 작가가, 후배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을 위하여 쓰는 글이자 동시에 전작인 <책, 이게 뭐라고>와 궤를 같이 하면서 응원과 따뜻한 시선을 한 스푼씩 얹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가 실제로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들이 모두 이 책에 들어가 있고 그래서인지 마치 선배가 직접 작성한 인수인계서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작법서'라는 이유로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배제되어있고 작가 역시 그러한 책이 되지 않기를 희망하며 썼음을 직접 밝혀두었다. 작가는 이 책에서 기존 작법서들의 문제점과, 그러한 작법서들이 범한 오류들 그리고 그 책을 그대로 읽고 행해본 지망생들과 더불어 자신만의 견해까지 함께 이 책에 담았는데, 나 역시 또 한 명의 작가 지망생으로써 깊이 동감하는 바였다. 종종 어떤 작법서들을 보자면 마치 '한 달 안에 영어회화 완성하기' 따위의 실용서적이 떠오른다.


더불어 장강명작가는 이번 책을 통하여 다시 읽고 쓰는 공동체의 힘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던진다. 한국문학이 쇠락하는 이유는 그만큼 좋은 원고가 없기 때문도 있을 테지만, 좋은 신간을 발굴해내는 독서공동체의 힘이 적기 때문이라고. 그는 작가가 어떤 대단하고 위대한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누구든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 말하며 모든 작가지망생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동시에 보낸다. 구독자가 이제 겨우 100명을 조금 넘은 무명 브런치작가인 나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일 테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장강명 작가의 공통점은 그들이 작가를 한 명의 예술인라기보다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한 명의 '직업인'으로 보는 시선일 것이다. 사실 유명 작가들이 이러한 시선으로 담긴 글들은 어린 시절부터 출판작가가 꿈인 나 같은 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따뜻한 위로가 된다.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으면 마치 장강명작가가 나의 직속 선배와도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의 글에서는 쓰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어떠한 애정이 느껴진다. 나 역시 장강명작가의 말처럼 읽고 쓰는 것이 대단치 않은 사회가 오기를 희망한다. 짧은 카드 뉴스에 잠식된 얕은 대화가 아닌, 깊은 사유와 함께하는 대화가 어색하지 않은 사회가 도래하기를 희망한다. 더불어 장강명작가는 위 책에서 꽤 여러 번 카카오 브런치를 언급한다. 현재 이 플랫폼이 가진 수많은 허점과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이곳에 글을 올리는 나 역시 같은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영상 세계로 뛰어들어갈 때, 글 쓰는 세계의 이들을 반기는 마음은 장강명작가와 나, 그리고 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희망하는 바일 테니까. 



공익적 가치가 충분하고 큰돈이 들 것 같지도 않은데 국가 예산으로 그런 사업을 지원하면 좋겠다. 긴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가 발전한다. 이해와 성찰의 총량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뜻이므로. 반대로 사람들이 한 줄짜리 댓글에 몰두하는 사회는 얕고 비참하다.


설사 정부의 지원이 없더라도 옛 문청들께 글쓰기를 꼭 권하고 싶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이제는 남을 위한 삶이 아닌, 내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행복하게 글을 썼다." (신기남 소설가)

"소설을 쓸 때 나만이 느끼는 희열 같은 게 있다. 사실 소설 쓸 때가 제일 행복하다." (송호근 소설가)


p. 28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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