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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an 24. 2022

2015.12.4 / 랜드마크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일

Pisa, Italia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피사의 사탑이었다어린 시절부터 각종 매체에서 보았던 피사의 사탑은 이탈리아에서 꼭 가보아야 할 관광지이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나올 법한 미스터리 한 건축물이었다그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답게 각종 테마파크 안에는 피사의 사탑 모형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던 나는 실제로 저곳에 가보리라는 환상을 품었다그러한 연유로 피사의 사탑을 보는 일은 이탈리아에서 해보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과제이자그 앞에서 손을 번쩍 들고 사진을 찍어야 비로소 피사의 사탑을 보았노라 말할 수 있는 일이 되고 말았.

키스 해링 벽화(Tuttomondo di Keith Haring) 그 앞 카페

중앙역에서 나와 키스 해링의 벽화가 그려진 카페에 앉아 간단한 휴식을 취한 뒤 목적지를 향해 다시 길을 나섰다당시에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게임에 빠져있던 나는 피사의 사탑으로 가는 거리가 흡사 게임 속과도 같아 웃음이 났다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게임 속 배경에서나 보던 나라에 실제로 발을 딛고 있다니낯설면서도 익숙한 거리 끝에는 수많은 모조품으로 보았던 피사의 사탑이 자리하였다.

피사의 사탑 (Leaning Tower of Pisa)
Piazza del Duomo
피사 대성당 (Cattedrale di Pisa)

눈앞에서 실제로 보게 된 피사의 사탑은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와 적은 기울기에 이곳이 정말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이 맞는지 의심하게 했다. 에펠탑처럼 공원 한가운데에 거대한 위용을 뽐내며 서있으리라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리 대성당 옆에 위치한 작은 탑에 가까웠다두오모 광장과 피사 대성당에 나란히 서있던 피사의 사탑은 각도에 따라 심히 기울여 보이기도 곧바로 서있어 보이기도 하였다. 마치 모서리 한쪽이 반으로 잘려나간 직사각형과도 같은 모습에 나는 피사의 사탑이 조금 더 기울어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고, 장난치듯 카메라를 한껏 기울여 사진을 찍곤 하였다.


내 차례가 되기만을 기다리다가 피사의 사탑 앞에서 익살스러운 포즈로 사진을 찍은 뒤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전송하였다. 친구들은 한국의 어느 테마파크에 있는 것이 아니냐며 놀려댔고 가족들은 조심히 여행하라는 문자와 함께 내가 피사의 사탑에 와있는 것을 신기해하였다. 그 당시에는 우중충한 날씨와 기대와는 달리 적은 규모에 꽤 실망하였지만, 여행에서 돌아와 그때 찍은 사진을 다시 보니 내가 피사의 사탑에 갔다는 사실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도시의 랜드마크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때때로 여행 중 하나의 과제처럼 느껴진다. 마치 이곳에 내가 왔음을 남겨야 하는 하나의 발자국과도 같다중요한 것은 당시에 지쳐있던 긴 여행도그리고 그 여행에서 의무감에 찍은 사진들도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는 것이다남는 것은 사진이라는 우스갯소리에 함부로 토를 달 수 없는 이유는 어쩌면 사진이란 추억을 여며주는 단추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한 연유로 우리는 카메라에 정신이 팔려 채 눈으로 먼저 담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종종 저질러 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돌아와 나의 여행을 반추하게 만들 무언가를 하나라도 더 남겨놓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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