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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an 27. 2022

<고르고 고른 말> 문학이라는 예술, 예술이라는 언어

한 명의 작가가 몇 년에 걸친 기간을 두고 출간해온 여정을 첫 책부터 읽어와 오면, 작가의 인생을 마치 함께 걸어가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물론 책을 내는 족족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SNS의 팔로워는 만 단위를 뛰어넘는 유명한 작가일지어도, 나의 마음속 한 구석에는 왜인지 모르게 내적인 친밀감이 쌓인다. 그렇게 처음 홍인혜작가의 책을 접한 뒤 10년이 흘렀다. 어느새 내가 좋아하던 작가는 시인이 되어, 그렇게 언어를 직조해내는 예술가가 되어 한 권의 책을 또다시 출간하였다. 작가의 이번 신간을 읽으며 왜 몇 번이고 눈물을 쏟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미술작품을 보며 누군가 눈물을 훔치는 것과도 같은 이유는 아닐까.


홍인혜작가의 세 번째 에세이집 <고르고 고른 말>은 책의 제목처럼 작가가 평소에 듣고 써왔던 모든 말들에 대한 사유가 적힌 책이다. 기존에 작가가 선보인 두 권의 에세이집은 다큐멘터리에 영역에 가깝다면 이번 신작은 마치 한 권의 잘 만들어진 옴니버스식 독립영화와도 같다. 하나의 이야기가 모이고 모여 결국 영화 한 편을 다 보았을 때 이 모든 이야기가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의 감상. 이번 작가의 신작을 굳이 어떤 미사여구로 표현해야 한다면, 나는 위의 말을 택하고 싶다.


오히려 잘 쓰인 책을 읽으면 그 책에 관하여 딱히 무어라 할 말을 잃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의 감상을 이야기해야 할지 골몰하다 보면 어느새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앞선 두 권의 에세이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혼자일 것 행복할 것>이 작가 개인의 어느 삶 한 부분에 관하여 다룬 이야기라면 이번 에세이는 예전 방식대로 촬영한 흑백영화의 필름과도 같다. 그러니까 필름의 어느 한 장면 장면을 보면 마치 하나의 사진과도 같지만 그 필름을 영사기에 돌린다면 무성영화가 상영되는 것처럼, 그렇게 불혹 근처까지 흘러온 작가의 인생을 한 편의 책으로 관람한 것과도 같다. 글 한 편 한 편에 작가가 꾹꾹 눌러 담은 사유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렇게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면 이 책은 언어생활이라는 말 뒤에 숨겨진 언어창의노동자의 인생이 담겼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챈다.


나 역시 작가와 마찬가지로 어려서부터는 말이 많은 아이로, 커서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물론 나의 글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미치는 영향력에 비하여 개인의 일기장과도 같은 수준이지만, 아무튼간에 매일 일정한 글을 쏟아내고 있으니 같은 언어생활자라고 묶이고 싶다. 도서관사서라는 직업으로 인하여 매일을 활자 속에 뒤덮여 사는 나 역시 생업과 언어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때문인지 호주에서 1년간 살면서 내가 얼마나 한글을 사랑하는 지를 깨달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초에 나고 자라면서부터 써온 나의 모국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


언어예술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잘 쓰인 책 한 권이 주는 깊은 감명은 때때로 어떤 이에게 영감을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의 글 역시 누군가에게 하나의 영감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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