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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Feb 23. 2022

<아무튼, 양말> 양말은 거들 뿐 취향에 관한 이야기

구달작가의 팬인 나조차도 <아무튼, 양말>을 읽기까지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양말이라면 마트에서 파는 10족세트를 서랍함도 아니고, 바구니에다가 그저 쑤셔놓는 내가 양말에 관한 책을 읽어도 될지 고민스러웠다. 아무리 구달작가의 글을 좋아하고 팬심이 가득하다 할지여도 양말에 'ㅇ'에도 관심이 없는 내가 이런 책을 읽어도 될런지 송구스러웠다. 게다가 작가의 SNS를 진작에 팔로우하고 있던 나는 작가가 양말에 관해 얼마나 진심인지를 진작부터 알고있었다. 검은색 양말만 신는 나따위가 양말에 관한 책을 읽을 자격같은 것은 없어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그저 작가를 향한 팬심 하나 때문이었다. 몇 해 전 근무한 학교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구달작가의 책 <일개미 자서전>은 교육현장에서는 지극히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었다. 마치 불온서적과도 같이 느껴진 그 책을 치우듯이 집어들어 순식간에 읽어치웠고 그렇게 구달작가는 내가 사랑하는 작가 리스트에 올라 신간을 기다리게 만드는 에세이스트가 되었다. 그런 작가의 책을 고작 양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다니. 양심보다는 팬심이 앞서는 순간이었다.


양말에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아무튼, 양말>은 읽고나면 양말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책이었다. 작가가 가진 특유의 개성있고 위트있는 문체가 큰 덕을 보았다고 할 수있겠다. 사실 이 책은 양말을 너무도 좋아하여 88켤레나 소장하고 있는 양말성애자의 양말에 관한 이야기를 표제로 한 취향에 관한 이야기였다.(위 책의 시리즈인 <아무튼>시리즈 전 권이 모두 취향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만.) 무언가를 좋아하기까지 넘어 사모으는 덕후기질이 1%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작가의 글이 공감이 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양말은 어쩌면 소재일 뿐이라고 말하기에는 작가가 가진 양말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 지 알기에 조금은 돌려 말해보겠다. 위 책은 이토록 공고한 취향을 만든 작가 자신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와도 같았다. 작가가 하나하나 모아둔 88켤레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아닌 88켤레까지 모으게 된 작가의 취향에 관한 애정어린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양말에 관심이 없어도 무언가에 빠져본 덕후라면 당장 이 책을 읽기에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작가의 또 다른 에세이인 <읽는 개 좋아>를 막 펼쳐들 즈음, 대학동문이자 대학원동기인 J사서쌤에게 양말세트를 선물받았다. 하필이면 양말에 관한 책을 다 읽자마자 양말을 선물한 사람이 같은 사서라니 꽤 낭만적인 일이 아닐 수없다. 그녀가 선물한 양말들은 차마 나의 남루한 검은색 양말들과 함께할 수 없어 포장된 상자에 그대로 담아놓았다. 문득 옆에 바구니에 널부러진 양말들 속에서 엄마가 유럽여행갈 때 신고가라며 사준 골프 양말이 눈에 띄었다. 양말에 관심이 없던 나는 사실 양말에 관심이 없던 게 아니라, 양말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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