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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Feb 24. 2022

<읽는 개 좋아>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까미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일주일 가량 우리집에 머문 적이 있었다. 까미는 큰이모가 기르시던 토이푸들이었는데, 이모가 해외여행을 가시는 동안 잠시 우리집에 기거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족은 한 번도 반려견을 키우지 않았을 정도로 강아지에 대해서 무지했지만 까미는 우리가족을 꽤 좋아했어서 그녀와의 동거생활에 큰 거부감은 없었다. 그리고 당시 가족들 중 유일하게 백수였던 나는 별 수없이 까미와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까미와 나는 그 기간 동안 잊지 못할 큰 일을 겪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까미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던 중 저 멀리서 목줄이 풀린 진돗개가 우리를 향해 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몸에 소름이 돋은 나는 까미를 들쳐업고 냅다 뒷걸음질 쳐 다행히 개와 멀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와 까미사이에서는 어떤 유대감 비슷한 것이 생겼으리라 임시 견주는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낯선 환경에 떨어진 강아지와 반려견을 양육해본 경험이 없는 임시견주 사이에서 서로 간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즈음, 동생과 나는 까미가 어서 이 집에서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평소 같았으면 방문을 어김없이 긁어대며 우리 곁으로 다가왔을 까미였지만 그날따라 우리가 뱉은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꺼먼 눈을 꿈뻑대며 망부석처럼 그저 우리를 처연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까미는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 아닐까.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다가와도 사랑받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아무리 이모댁에 놀러 갈 때마다 우리를 반갑게 대했던 까미일지어도, 우리는 그때 완곡하게 까미를 돌보는 일을 거절했어야만 했다. 다행히도 까미는 우리집에서 무사히 잘 있다가 이모댁에 돌아갔지만, 애초에 반려견을 키워본 적이 없는 이들이 돌보는 것에 한계가 있을 터였다. 우리가족은 그 후로 반려견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가를 깨닫게 되었고, 누구 하나 섣불리 강아지를 입양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읽는 개 좋아>는 구달작가의 반려견인 빌보와의 일화를 독서와 엮은 에세이집이다. 반려견을 양육하며 느낀 작가 개인의 생각들, 반려견을 대하는 시민의식과 특히나 여성 견주들에게만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이야기 등 여성과 견주라면 한 번씩 경험해볼 일들을 작가는 자신이 읽어온 책과 함께 풀어냈다. 글 마무리에는 글의 레퍼런스가 된 책의 서지사항이 지면 끝자락에 적혀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인근 도서관에서 그 책을 소장 중인지를 찾아보았다. 마치 책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며 바통을 넘겨주듯,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도 또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반려견을 입양하는 일을 무작정 추천하지 않는다. 작가는 시종 종이 다른 한 생명과 함께 삶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숭고하고도 행복한 경험임과 동시에 지난한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을 말한다. 작가가 들려주는 빌보와의 일화는 한 편의 동화 같기만 한 감동실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의 영역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달작가가 들려주는 그 인간극장 같은 일화들은 매 글마다 아름답다. 아이도 키워보지 않고 강아지도 키워보지 않은 나이지만,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의 숭고함을 짐짓 가늠해본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저술한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을 사랑하면서 생기는 다정한 유전자가 곧 우리 인류를 살아남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부모 같지 않은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면서 생기는 비극과 마찬가지로, 견주 같지 않은 견주들이 반려견을 쉽게 '구입'하는 비극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여전히 귀엽다며 남의 아이를 쉽게 만지는 몰상식한 행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이, 개라는 이유로 쉽게 아이들의 체험학습도구가 되는 인식이 개선되기를 바라본다. 그렇게 반려견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존엄한 생명체라는 사실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이 책을 읽은 모든 이들과 함께 도래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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